적게 줘도 탈, 많이 줘도 탈 …
DBR 그래픽
대우건설처럼 현금이 부족한 기업이 배당금을 지급하거나 유상감자를 실시하는 일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와 관련해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인수 기업의 주주 관점에서 보면 단기적으로는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으니 이익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이익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무구조 악화로 피인수 기업이 위기에 빠질 수 있고 해당 회사 직원들의 사기 저하도 불가피하므로, 장기적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현금이 부족한 기업이 배당을 할 때는 피인수 기업 직원들이 ‘배당금 지급으로 대주주의 배만 채운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복리후생 제도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73호(1월 15일자)에 실린 최 교수의 기고문을 간추린다.
대우건설처럼 빚을 내 배당 또는 유상감자를 한 후, 이 방식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법을 ‘부채를 통한 자본구조 재조정(LR·leveraged recapitalization)’이라 한다.
LR의 구조를 잘 보여주는 우스갯소리는 “주부들이 큰 빚을 얻어 아파트를 산 후, 막대한 대출금이 찍힌 통장을 남편에게 주면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남편이 알아서 술 담배를 줄이더라”라는 말이다. 이를 전문 용어로 ‘부채의 길들이기 효과(disciplinary role)’라고 한다.
LR는 인수 기업에 어떤 이점을 줄까. 일단 투자금을 빨리 회수할 수 있다. 또 피인수 회사의 구조조정도 손쉽게 단행할 수 있다. 재무구조가 나빠지면 정상적인 상황보다 사업 재편을 할 명분을 얻기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경영 저널인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LR의 대표 사례로 실렸던 미국의 실드 에어(Sealed Air)를 보자. 파손 방지용 비닐 완충재를 만드는 실드 에어는 1989년 자사의 주가가 45달러일 때 주당 40달러의 배당을 실시했다. 배당금은 전액 은행 대출로 마련했다. 은행 빚을 내 회사의 시장 가치와 맞먹는 대규모 배당을 한 셈이다.
실드 에어의 최고경영자(CEO)는 왜 이런 이상한 결정을 내렸을까? 일단 CEO는 실드 에어의 대주주였으므로 배당을 통해 상당한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또한 그는 회사를 일부러 위기에 빠뜨린 후 보상제도 변경을 포함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했다. 경영 효율성을 향상시킨 실드 에어는 배당금을 마련하기 위해 진 빚을 조금씩 갚아 나갔다. 결국 배당 지급 이전의 재무 상태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 과도한 배당금
HBR에서는 실드 에어를 LR의 성공 사례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실드 에어의 사례가 지극히 예외적인 데다, 배당금을 많이 주는 게 무조건 해당 회사와 주주 이익에 부합한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실드 에어는 업계에 경쟁자도 많지 않고, 상당한 현금 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안정적인 기업이었다. 큰 빚을 낸 시기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만약 실드 에어가 1997년의 아시아 경제위기나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 직전 이런 정책을 단행했다면 어땠을까. 파산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빚을 많이 얻으면 이자 비용에 대한 감세 효과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작은 이익 때문에 이런 위험한 모험을 함부로 감행하면 안 된다.
설사 모험이 성공해도 피해자가 생겨난다. 실드 에어의 직원들이 대표적이다. 회사가 어려운 형편에 처했으니 그들의 복지 수준은 축소되고 업무 강도가 높아졌을 게 뻔하다. 경기 상황이 나빠졌다거나,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위기에 빠진 것도 아닌데, 대주주의 결정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본 셈이다.
LR를 통해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임직원의 마음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을 몰아붙여 얻은 단기적 재무성과는 오랫동안 지속되기 힘들다. 실드 에어는 이런 문제점을 이익 공유제도(profit sharing plan) 도입 등을 통해 보완했기에 구조조정에 성공할 수 있었다.
○ 적절한 액수는?
그렇다면 배당금 지급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있을까. 답은 없다. 1000억 원을 줘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고, 전혀 주지 않아도 괜찮을 때가 있다. 세계적 거부인 워런 버핏의 회사 버크셔해서웨이는 배당금을 전혀 주지 않는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도 아주 조금 줄 뿐이다.
배당금을 주지 않아도 영업이익으로 창출한 돈을 재투자해 회사의 가치가 계속 상승한다면 여기에 불만을 가질 주주는 별로 없다. 미래 성장을 위한 재투자가 아니라면 현금을 쌓아두기보다 배당을 주는 게 낫다. 결국 얼마의 배당을 주느냐는 문제에 대한 답은 해당 회사의 현실과 투자 기회에 달려 있다.
일반적으로는 영업 활동에서 창출한 자금에서 투자에 사용한 자금을 빼고 남는 여유 자금인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의 범위 내에서 배당을 결정하는 게 정상이다. 실적이 좋지 않아 주가 하락을 경험했던 국내 모 기업은 주가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빌려 배당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잠시 주가를 떠받칠 수는 있어도 본질적인 문제 해결, 즉 실적을 개선하지 못하면 배당을 아무리 많이 줘도 주가는 장기적으로 하락한다. 주주들도 배당금 지급 자체보다 해당 회사의 실적 호조를 통한 장기적인 주가 상승을 더 반길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도 배당을 지급하는 기업의 수는 1980년대 중반 이후 계속 줄고 있다. 전체 이익 중 배당금으로 지급되는 비중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결국 기업을 꾸준히 성장시켜 주가를 계속 높이거나, 현재 주가를 유지하면서 배당을 지급하거나 어쨌든 주주들에게 적정한 수익을 보장할 정도로만 배당금을 조정하면 된다.
물론 배당을 적게 하는 게 무조건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잉여 현금이 많은 기업에서는 배당을 안 주려고 전문경영인이 일부러 기대 수익이 높지 않은 투자안에 투자를 집행해 오히려 미래 기업가치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회사가 직면한 투자 기회에 따라 적정한 투자를 하고, 그래도 남는 현금은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돌려주는 게 정답이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 교수 acchoi@snu.ac.kr
정리=하정민 기자 dew@donga.com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개인 구독 문의 02-721-7800, 단체 구독 문의 02-2020-0685
튀르크 10만 대군에 맞선 비잔틴 7000병사
▼ 전쟁과 경영
기업도 콜레스테롤 쌓이면 한순간에 몰락
▼ Harvard Business Review
트렌드를 주목하라, 당신 몸값이 올라간다
▼ Career Plan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