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고받기 외교 기대” VS “앞으로 단속 되겠나”
■ 정부 ‘실리’
정부가 중국 어선의 서해 침몰사건 당시 해경 경비함을 들이받은 혐의로 체포한 중국인 선원 3명을 25일 중국으로 서둘러 송환한 것은 중국이 한국의 조사결과에 따른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 선원의 조속한 석방을 요청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26일 “중국 측이 외교채널을 통한 협의 과정에서 한국의 조사결과에 따른 사실관계를 일부 인정하면서 선원의 조속한 석방과 신속한 사건 마무리를 요청해왔고 한국 정부도 이 문제를 조기에 원만하게 해결하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검찰에 법 절차를 생략하지 않는 선에서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양국 간 협의 과정에서 중국 측은 장위(姜瑜) 외교부 대변인이 21일 한국에 요구했던 ‘사상자 보상 및 사고 책임자 문책’을 명시적으로 철회하지 않았지만 사건의 사실관계를 일부 인정한 만큼 더는 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것으로 정부는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일각에서 ‘저자세 외교’라는 비난이 나오는 것에 대해 “이 문제가 비화돼 다른 외교적 갈등으로 옮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 법 절차를 생략한 것이 아니다. 중국 측에도 절차를 생략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측에 국내법 절차에 따라 조사를 충실하게 진행할 것이나 시간을 끌지 않겠다고 전했다”며 “정선 명령을 어기고 도주한 중국 어선에 대해서는 중국 당국에 처벌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북한의 잇단 도발로 양국 간 외교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사실관계가 분명한 이번 사안을 놓고 자존심 싸움을 하기보다는 실리적 외교를 추구하는 것이 얻을 것이 많다고 정부는 강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중국 어선 단속에 대한 국제법적 권리를 강조하면서도 사건을 조기에 마무리해 중국에 협력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북핵 6자회담 등에서 중국이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로서 한국에 협력하는 ‘포괄적 상호주의’를 기대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발언에 대한 중국의 해명이 그런 단초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장 대변인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북한도 한반도 비핵화와 2005년 9·19공동성명의 원칙에 따라 핵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며 비핵화에 대해 주변국들이 공유해온 원칙을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한국이 발언의 의도를 문의하자 중국은 24일 외교채널을 통해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은 비핵화와 관련된 국제규범을 준수한다는 전제 아래서 가능하다. 중국과 한국의 입장에 차이가 없다”고 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 정부가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면 자칫 한중 간 상호 이익을 바탕으로 한 어업협정에 따른 ‘잠정조치수역’이 영유권 분쟁에 휩싸인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처럼 국제사회에 인식될 우려도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 총리실이 주도적으로 나서 이번 서해 중국 어선 침몰 사건을 상세히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로 일본 내에서 중국 어선 침몰 사건에 관심이 많았다”며 “일본 총리실은 한국도 중국과 상대하다가 일본과 같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부각시키려는 ‘희망사항’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와 전혀 다른 성격이기 때문에 분쟁지역처럼 비치는 대응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법적인 측면에서도 체포된 선원들은 정선 명령을 어기고 달아난 배의 선원이 아닌 데다 조업 허가를 받은 상태였고, 해경 경비함을 들이받은 직접 책임자인 선장은 이미 사망한 만큼 불기소 처분하는 것이 실용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이번 사건 계기로 中어선들 불법행위 심해질 것”▼
폭력 쓰고 도주한 선원 채증자료 中에 보내기로
■ 해경 ‘불만’
외교통상부가 우리 측 경비함을 들이받은 중국 랴오잉위(遼營漁·63t급) 35403호 선원 3명을 처벌하지 않고 서둘러 중국으로 돌려보내자 해경 내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 측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불법 조업을 단속하는 경찰관들은 앞으로 중국 어선의 불법 폭력행위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해경 경비함을 타는 한 경찰관은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중국 어선이 침몰하는 바람에 중국으로 도망간 어선 선원들은 한국의 정당한 단속에 흉기를 휘둘러 경찰관 4명을 다치게 했다”며 “폭력행위를 촬영한 명백한 영상자료가 있는 만큼 범죄인 인도 청구 등을 통해서라도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정부 차원에서 조율한 것이겠지만 선장이 숨져 공소권이 없다는 이유로 선원을 모두 풀어준 것을 빌미로 서해상에서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과 폭력행위가 더 심해질 것”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중국 어선을 단속하라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송환된 중국 선원들에 대한 검찰의 기소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교적 문제를 고려해 서둘러 송환한 것이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해경 관계자는 “검찰의 불기소 결정이 유력하지만 행여 기소가 될 경우 이미 송환한 상태라 처벌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나중에 실효성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군산해양경찰서는 25일 중국 랴오잉위호 선원 3명을 석방하고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해경은 “당시 랴오잉위호에 탔던 선원 3명을 특수공무방해 혐의로 입건해 조사한 결과 공무집행을 주도적으로 방해한 선장(사망)을 제외한 3명은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이 없어 신병을 인도했다”고 밝혔다. 해경은 당시 승선한 선원의 진술과 경비함에서 촬영한 동영상, 레이더스코프 기록, 항박일지 등 관련 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내린 결론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전북 군산시 중앙장례식장에 안치된 랴오잉위호 선장의 시신은 중국 정부 및 유족과 협의해 이번 주에 인도하고 전복사고로 실종된 선원 1명에 대한 실종자 수색도 조만간 재개하기로 했다. 또 단속하는 경찰관 4명을 폭행하고 중국 영해로 달아난 랴오잉위 35432호와 관련한 채증 자료를 중국 당국에 보내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기로 했다.
군산=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동영상=EEZ 넘어와 치어까지 싹쓸이, 중국어선 불법조업 적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