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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소비자 편익 발목 잡는 규제 왜 그대로 두나

입력 | 2010-12-25 03:00:00


이른 새벽 소화불량에 시달리던 회사원 김모 씨는 아침 내내 문 닫힌 약국 네 곳을 전전한 끝에 겨우 약을 사 먹었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 여행 중 처방전이 필요 없는 간단한 약을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입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한국에서는 잘못된 제도로 헛고생을 하는 것 같아 부아가 치밀었다.

이런 불편을 덜어주려면 안전성이 검증되고 오남용의 우려가 적어 의사의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단순의약품(OTC)의 소매점 판매를 허용하면 된다. OTC란 ‘카운터 너머(Over The Counter)’의 약자다. 약사가 근무하는 카운터 너머에 있는 일반약은 전문약이나 처방약과 달리 소비자가 쉽게 접근하게 하자는 의미다. 국내에서도 1993년부터 소매점에서 OTC의 판매를 허용하자는 방안이 제기됐다. 담당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이를 추진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달라진 것이 없다.

약사단체는 소매점에서 약을 팔면 의약품 오남용 문제가 심화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선진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소비자 편익이 더 커진다. 전재희 전 복지부 장관은 “한국은 약국이 슈퍼마켓보다 많아 국민 불편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3월 대한상공회의소 설문조사 결과 ‘야간이나 공휴일에 문을 연 약국을 찾지 못해 불편을 겪었다’는 응답이 70%였다. 소매점 판매가 가능해지기를 바라는 약으로는 소화제 진통제 감기약 소독제 자양강장제 비타민 등이 꼽혔다. 국민 보건과 건강을 책임진다는 복지부가 국민 불편은 무시하고 업계만 감싸는 꼴이다. 권용진 서울대 교수는 “의약분업 10년 만에 복지부가 약업계(藥業界)에 포섭당한 탓”이라고 지적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복지부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미국 같은 데서는 슈퍼에서 약을 사 먹는데 한국은 어떻게 하나”라고 물었다. 진수희 복지부 장관은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미국 유럽 일본은 소매점의 OTC 판매를 허용해 경쟁에 따른 가격인하의 효과까지 거둔다. 미국은 평균적인 소비자가 소매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의약품의 종류와 범위를 상세히 정의해 놓았다. 일본은 1998년 일부 약의 소매점 판매를 허용했고 작년 6월엔 일반의약품의 95%를 팔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업계를 보호하는 규제 탓에 국민의 편익이 위축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안경점 등 전문자격사 업종의 자본투자와 대형화가 가능하게 하는 선진화 방안도 주춤한 상태다. 보육시설의 이용을 늘리기 위한 보육료 상한제는 보육 서비스의 다양화와 질적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 정부는 서비스산업 규제를 소비자 편익 위주로 전면 재검토해 손질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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