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교수팀 ‘초고체 연구결과’ 사이언스에 발표
《“순자(荀子) 권학편에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남(藍)이고 김은성 교수가 청(靑)이죠. 허허!”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이달 13일 아침 일본 도쿄에서 북쪽으로 차를 타고 1시간가량 달려 와코 시에 도착했다. 와코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구 기관인 이화학연구소(理硏·리켄)가 있다. 리켄 저온물리연구실에는 김은성 KAIST 물리학과 교수(39)의 스승인 모지스 챈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물리학과 교수(64)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기발한 실험으로 초고체의 존재를 증명한 김 교수팀의 연구 결과(논문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이달 10일자에 실림)에 감명을 받아 공동연구를 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것이다.》
○ 스승의 스승이 반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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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전 세계 실험실 10여 곳에서 김 교수의 실험을 재현했고 초고체의 존재가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하지만 몇몇 물리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초고체 같은 괴상한 실체를 끌어들이지 않고도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반대 주장을 가장 강하게 펴는 물리학자는 챈 교수의 스승인 존 레피 미국 코넬대 물리학과 교수(79)다. 1970년대 비틀림 진동자를 발명한 주인공인 레피 교수는 1980년대 이를 이용해 초고체의 존재를 밝히는 실험을 했지만 실패했다. 2004년 명예교수 자리도 내놓고 막 은퇴를 하려던 그는 제자팀의 논문을 보고 다시 열정이 불타올랐다.
그는 현재까지 홀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 6월 권위 있는 물리학저널인 ‘피지컬리뷰레터스’에 낸 논문에서는 온도를 낮출 때 진동속도가 빨라지는 원인을 고체헬륨의 탄성 변화로 설명해 주목받았다. 고체헬륨은 묵처럼 탄성이 있어 진동운동에 저항한다. 만일 온도를 더 낮추면 탄성이 줄어 단단해지면서 저항이 줄어들어 진동속도가 빨라진다는 것. 그런데 이번에 김 교수팀이 레피 교수의 주장을 무력화시킨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 일본 리켄의 첨단장비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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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물리학자들이 초고체 공동연구를 위해 일본 리켄에 모였다. 왼쪽부터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모지스 챈 교수, 게이오대 시라하마 게이야 교수, KAIST 김은성 교수, 리켄 고노 기미토시 박사.와코=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sukki@donga.com
그러나 초고체 때문이라면 진동자의 느린 회전조차 고체헬륨 내부에 소용돌이를 일으켜 초유체가 생기는 걸 방해할 것이다. 그 결과 온도를 낮출 때 진동속도가 빨라지는 정도가 약해져야 한다. 실험 결과는 김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리켄에는 전 세계에 3대밖에 없다는, 극저온에서 진동자를 회전시킬 수 있는 장비가 있다. 김 교수가 리켄 저온물리연구실 고노 기미토시 박사팀과 공동연구를 하게 된 이유다.
“사실 초고체 현상은 아직까지 이론으로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가설을 세우고 이를 입증하는 실험을 계속해 나가야지요.”
김 교수의 말에 챈 교수는 스승답게 멋진 논평을 했다. “몇몇 사람은 초고체가 (이론의 관점에서) ‘지저분하다(messy)’고 말하지만 저는 오히려 ‘풍부하다(rich)’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리학의 다양한 측면을 늘 고려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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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코=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초유체(superfluid)::
절대영도(온도의 최저점인 섭씨 영하 273.15도)에 가까운 극저온에서 점성이 사라지면서 마술처럼 벽을 타고 위로 흐르거나 사방으로 흩어지는 특성을 지닌 물질이다. 초유체 현상은 1937년 액체헬륨에서 처음 관찰됐다.
::초고체(supersolid)::
고체헬륨이 절대영도보다 불과 0.2도 높은 극저온으로 냉각될 때 그 일부가 초유체로 존재하는 상태. 1960년대 말 초고체의 존재가 이론적으로 예측된 뒤 많은 물리학자들이 그 존재를 입증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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