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목욕탕서 씻고 식사는 4500원짜리 콩나물국밥손학규 민주당 대표 천막농성 동행취재기
17일 새벽 1시, 전북 전주 완산구 중앙동에 설치된 민주당 천막농성장.
손학규 대표가 손에 칫솔을 챙겨 천막을 나서면서 "밤에 씻을 곳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천막 바로 옆 공영주차장 구석에 있는 조그만 화장실에서 간단한 세면을 마치고 돌아와 천막 안에서 잠을 청했다.
손 대표가 한나라당의 새해 예산안 및 쟁점법안 강행처리에 반발해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이날로 아흐레째 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다섯 밤을 보내고 전국을 순회하기 시작해 인천, 충남 천안, 부산을 돌아 전주까지 왔다.
거리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예산처리 무효화' 서명운동을 벌이고 '이명박 정부 규탄대회'를 열고 있지만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 "서명운동, 흐지부지 안 끝낼 것"
16일 오후 9시 반에 전주에 도착한 손 대표는 천막이 아닌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천막 근처 루미나리에 거리로 직행했다.
이미 일부 상점은 문을 닫았고 행인의 발걸음은 뜸했지만 상점 안과 거리에 있는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이명박 정권, 한나라당을 꾸짖어 주세요"라며 서명을 부탁했다.
1시간 가량 그렇게 골목골목 다니다가 "사람이 없다. 터미널로 가겠다"며 김완주 전북지사 등 몇 명만 대동해 터미널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천막을 찾은 것이 밤 11시.
서명운동에 나섰던 이 지역 국회의원, 지자체장, 지역의원 등이 모이면서 즉석 간담회가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손 대표는 "사람들이 '서명운동 시작만 해놓고 흐지부지 끝나는 거 아니냐'고들 하는데 그럴 일 없을 것"이라며 장외투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또 이번 장외투쟁에 대해 "인천에선 의원 40명이 규탄대회에 참여했고, 부산에서도 최고위원 한 명 빼고 모두 모였다. 의원들의 이런 반응은 흔치 않다. 어느 때보다 단결하고 있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한 원외 지역위원장의 "민주당이 10년 집권 동안 야성(野性)이 사라진 것 같다. 야성을 되살리는 계기로 삼아달라"는 당부에 손 대표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장세환 의원이 "손 대표의 투쟁모습에 박수를 많이 보낸다. 이번에 그놈의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확실히 뗄 것 같다"고 말하자 손 대표는 멋쩍은 듯 웃기도 했다.
● 천막에 누워보니…
천막 안에는 대형 전기난로 한 대와 스티로폼으로 만든 매트리스, 요와 이불이 전부였지만 손 대표는 전기장판을 만지작거리며 만족스러워했다.
전북 출신인 장세환 김춘진 최규성 의원도 잘 채비를 했다. 이춘석 의원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잘 자리를 빼앗겨 인근 모텔로 향했다.
기자도 바로 옆 작은 천막에 몸을 뉘었다. 전기장판은 없었고 난방기구는 전기난로가 전부였다. 이날 전주지역 최저 기온은 영하 9.6도. 천막 사이로 바람이 새 들어와 이불을 파고들었다. 점퍼까지 옷을 겹겹이 입은 채 누웠지만 추위에 제대로 잠을 청하기 어려웠다. 부산에서 한밤 중 갑자기 전기장판의 전원이 꺼져 옷을 더 껴입고 잤다던 손 대표의 말이 떠올랐다.
17일 오전 6시 반. 손 대표는 개운한 표정으로 천막에서 나와 살짝 뜬 뒷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오늘은 따뜻하게 잘 잤다"고 했다.
아침에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는 건 천막농성 후 빼놓지 않는 일정. 손 대표는 택시를 타고 가까운 목욕탕을 향하는 잠깐 사이에도 택시기사에게 "몇 교대로 일하냐?" "급여는 얼마냐?"며 이것저것 물어봤다.
차가 목욕탕 앞에 도착해서도 기사와의 대화가 끝나지 않아 한 동안 내리지 못했다. "교대 없이 일한다고? 처음 듣는 근무형태인데…." 목욕탕에 들어서면서도 기사와의 대화를 곱씹었다.
하루 중 가장 편안한 때라는 목욕시간이었지만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 덕에 긴장을 늦출 순 없었다. "손학규 대표님 아니세요? 여기서 주무신다더니 정말이었나 보네요." 알몸으로 면도를 하고 있는 중년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손 대표는 민망한 듯 악수만 건넸다.
아침식사는 4500원짜리 콩나물국밥. "이번 투쟁엔 민주당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반성의 의미도 있다. 호위호식은 안 된다"며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던 손 대표였지만 이날 만큼은 아침부터 몰려온 지역 정치인들의 강권에 식당을 찾았다.
● "고생만큼 성과 없을 것" 우려도
오전 8시. 천막에서 최고위원회의가 9시에 예정돼 있었지만 식사 후 손 대표는 천막이 아닌 시청 앞으로 향했다. 출근길 직장인들을 상대로 서명을 받기 위해서다.
손 대표의 한 측근은 "노숙이 체질인 것 같다. 돌아가며 보필하는 주변사람들이 먼저 지쳤다"고 했다. 다른 당직자는 "손 대표가 고생은 하는데 장외투쟁에 냉소적인 여론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고생한 만큼 성과가 나올지는 의문"이라며 "연일 강행군에 손 대표 몸이 상할 것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는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다시 거리로 향했다. 속옷을 제외하고도 상의 4겹, 하의 2겹. 목엔 머플러를 매고, 외투 위에 다시 한 지지자가 건넸다는 자주색 목도리를 둘렀다.
"한 중년 남성이 서명하면서 '예산안 진짜 막을 수 있냐'고 묻더라. 항의의 말로 들렸다. 서명운동 후에 뭘 할지 결정 못했지만, 당대표로서 민주당의 결연한 자세와 지향점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겠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동영상=국회 난장판 속 정부좌 손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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