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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마음은 못생겨도 괜찮니?

입력 | 2010-12-11 03:00:00


 ‘소녀’, 최정은 그림 제공 포털아트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끝낸 여학생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 중 으뜸으로 꼽히는 건 성형수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수능 성형특수’라는 말이 생기고 기다렸다는 듯 할인 이벤트를 하는 성형외과도 많습니다. 쌍꺼풀, 앞트임, 뒤트임, 부위별 지방 제거, 보톡스, 필러, 코끝성형 등등… 갖가지 시술방법과 가격표가 나붙어 흡사 음식점의 메뉴판을 연상케 합니다. 성형외과 원장이 잡지 인터뷰에서 수능을 끝낸 여학생들에게 ‘베이글녀(베이비페이스+글래머)’가 되려면 지방이식과 갖가지 성형을 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권장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대학생이 되기 위한 사전 준비가 오직 얼굴과 몸을 뜯어고치는 일밖에 없을까요?

몇 년 전, 세계적인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한국 여성에 대해 “서구적인 미모를 갖고 싶어 하는 열등성을 지녔고 한국은 성형수술의 천국”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영국의 BBC에서도 “한국 20대 여성은 절반 이상이 성형을 했고 수입의 30%를 미용에 쓴다”며 성형 광풍과 얼짱 문화 등 한국의 외모 지상주의에 신랄한 비판을 가한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에게 대학에 가거나 사회에 나가거나 올바른 인생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며 주변 어른이 따뜻한 격려와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읽어야 할 좋은 고전이나 명저 명작의 목록을 알려 주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젊음은 너무나 짧으니 열과 성을 다하는 자세로 살지 않으면 나이 들어 많은 것을 후회하게 된다는 말씀을 전하는 어른도 많았습니다. 그런 말씀을 듣고 자라 부모가 된 40, 50대는 작금의 세태가 너무 당혹스럽고 감당하기 버겁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수능 성형을 하겠다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딸에게 아버지는 조용히 타일렀습니다. 너는 지금도 충분히 예쁜데 무엇 때문에 얼굴을 고치려 하느냐. 그러자 딸이 거침없이 응대했습니다. 아빠 눈에만 그렇게 보여. 외모 때문에 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알기나 해? 딸의 말을 듣고 아빠는 한숨을 내쉬며 집안형편을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딸은 아빠를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경제적 무능을 탓했습니다. 어깨가 축 늘어진 아빠가 힘없는 어조로 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얼굴은 예쁘게 뜯어고치고 싶어 하면서 마음은 그렇게 못생겨도 괜찮니? 그러자 딸이 싸늘한 어조로 되물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

인간은 몸과 마음의 조화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어느 한쪽의 균형이 깨지면 인생의 리듬과 흐름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광적인 성형 열풍, 얼짱과 몸짱의 껍데기 문화로 대한민국은 육체성과 정신성의 조화가 흐트러진 지 오래입니다. 육체에만 집착하고 정신을 외면하는 삶에 되돌려지는 것은 왜곡된 자아인식과 정신적 공허뿐입니다. 이렇게 정신을 무시하고 육체성에만 집착하는 사회적 현상이 많은 정신질환자를 배출할 거라는 일부의 예견은 단순한 비관론이 아닙니다. 얼굴과 몸매에 목숨 거는 세태, 정말 마음은 함부로 방치해도 괜찮은 걸까요?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