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웃으면→친구가 웃고→친구의 친구가 웃고→세상이 웃는다◇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 제임스 파울러 지음·이충호 옮김·488쪽·1만5000원·김영사
빅토리아호 근처의 부코바에 위치한 여자기숙학교에서 갑자기 ‘웃음병’이 번져나갔다. 웃음을 참지 못하는 이 병은 한 사람에게서 다음 사람에게로 차례로 퍼져나가 결국 1000명 이상이 감염되었다. 감염은 돌발적으로 일어났고 한번 시작된 웃음은 사람에 따라 몇 분에서 몇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웃음병 증상이 최대 16일까지 계속된 사람도 있었다. 이 병의 발생을 처음 조사한 마케레레대의 랭킨 교수와 부코바 보건소장 필립은 환자를 대상으로 신체검사는 물론이고 척수액을 뽑아 검사하기도 했으며 음식물 독소 여부까지 검사했지만 원인을 밝혀낼 수 없었다.
이와 비슷한 일로 미국 테네시 주 맥민빌에 있는 워런카운티 고등학교의 사례를 꼽을 수 있다. 1998년 11월 12일 이 학교에는 학생 1825명과 교직원 140명이 있었다. 한 교사가 갑자기 휘발유 냄새가 난다며 두통과 호흡 곤란, 어지럼증, 구역질 등의 증상을 보였다. 이 반응을 본 학생 중 몇 명에게서도 갑자기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그날 하루에 모두 100명이 병원으로 실려 갔고 38명이 입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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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웃기 시작해서 주변이 온통 웃음바다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웃음의 전염성은 그만큼 강하다. 소셜네트워크가 인간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저자는 ‘소셜네트워크의 전염성은 친구, 친구의 친구, 친구의 친구의 친구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3단계 영향 법칙’을 내놓는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어떻게 감정의 상태가 전염되는 일이 벌어졌을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답을 제시한다. 하버드 로스쿨 교수와 캘리포니아대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들은 지난 10년간 소셜네트워크가 어떻게 생겨나며 어떻게 작용하고, 어떤 영향을 우리에게 미치는가라는 질문들에 큰 흥미를 느끼고 연구해왔다. 그들은 탄자니아의 웃음병 같은 일이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 사회적 연결망, 즉 소셜네트워크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가 인간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기 위해 1971년부터 2003년까지 총 1만2067명을 연구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소셜네트워크가 미치는 영향은 인간의 감정뿐 아니라 생활 건강 정치 종교 문화, 심지어 성적 취향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했던 것이다.
저자들은 소셜네트워크의 전염성을 ‘3단계 영향 법칙’이라고 명명했다. 3단계 영향 법칙이란 소셜네트워크로 형성된 친구(1단계), 친구의 친구(2단계), 친구의 친구의 친구(3단계) 내에서는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친구가 행복할 경우 당사자가 행복할 확률은 15% 더 높아지고, 친구의 친구가 행복할 가능성은 10%,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행복해질 가능성은 7%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4단계 이상일 경우에는 이러한 확산 효과가 거의 사라졌다.
이는 비만이나 금연, 정치적 성향, 심지어 배우자의 선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48년부터 매사추세츠 주 프레이밍햄에서 계속돼 온 ‘프레이밍햄 심장 연구’라는 역학조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비만인 사람은 친구나 친구의 친구, 친구의 친구의 친구도 비만인 경우가 많았다. 순전히 우연으로 생길 수 있는 비율보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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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은 ‘소셜네트워크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있어야 그에 맞는 사회적 처방이 가능하다’는 대전제에서 이 책을 기술했다. 전체 인류를 각 부분의 합보다 더 큰 것으로 만드는 데 소셜네트워크가 도움이 된다는 낙관론은 결국 행복의 증진으로 이어진다. 물론 그러한 낙관론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해도 건전한 정책과 행복 증진을 위해,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해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는 낙관론에는 기꺼이 동의하고 싶다.
김경집 인문학자·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