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경험을 살려 제3국들에 금융위기를 겪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고 우리도 글로벌 금융안정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비슷한 고통을 겪은 나라들의 공감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피라미만 잡고 대어는 놔준다?
10년 전쯤 조그만 금융회사를 신설한 사장이 설립 사실을 발표했다. 신문에 기사가 보도된 뒤 금감원 담당자로부터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가보니 “금융계에서 일어난 일은 금감원이 먼저 알아야지 나중에 알게 해서는 안 된다”며 호통을 치더라는 것이다. 그때는 국세청 못지않게 철저한 조직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최근 신한은행 사태, 우리은행의 C&그룹 특혜대출 의혹, 태광산업의 석연찮은 쌍용화재 인수 과정 등을 접하면서 금감원에 대한 실망이 커졌다. 금감원은 신한금융지주 라응찬 회장의 실명제법 위반이나 우리은행의 C&그룹 불법대출 사건은 이미 1년 전에 파악하고도 대충 넘어갔다. 태광그룹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재검사한다며 뒤늦게 부산하다. 작은 금융회사에는 제왕처럼 군림하면서 큰 비리에는 큰 구멍이 뚫려 있다는 항간의 지적에 반박하기가 궁색할 것이다.
금감원의 조직이기주의는 퇴직자 일자리 창출에서 신묘한 힘을 발휘한다. 2006년부터 만 5년이 채 안 된 기간에 2급 이상 퇴직자 88명 가운데 82명이 금융회사 감사로 재취업했다. 더구나 금감원은 ‘퇴직 전 3년 이내에 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관련된 기업에는 퇴직 후 2년간 취업을 금지한다’는 공직자윤리법에 걸리지 않도록 ‘보직 세탁’까지 해줬다. 먼저 퇴직한 선배가 피감 금융회사로 옮긴 뒤엔 감독권을 행사하는 후배들에게 잘 보여야 하니 감독원 내부의 상하 간에도 제대로 영(令)이 서겠는가. 아니 할 말로 금감원 내 부하가 상사의 말을 안 들어도 갑을(甲乙) 관계가 언제 뒤바뀔지 모르니 상사가 부하 눈치인들 안 보겠는가.
리스크 관리 ‘뚫린 구멍’ 책임 져야
금감원은 본래 관치금융의 폐해를 줄이고 감독기능을 효율화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영국 모델에서 따왔다.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이전부터 은행감독원을 한국은행에서 분리 독립시키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한은의 반대로 실현하지 못하다가 외환위기를 당하고 나서야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까지 합쳐 금감원을 만든 것이다.
재작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금융환경이 달라졌다. 영국은 올해 6월 금감원의 모델이었던 통합 금융감독청을 해체하고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이 감독을 총괄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를 파악하기 위해 금융안정위원회를 신설했다. 우리는 금감원이 잘해주기만을 기대하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G20 서울 정상회의가 끝난 뒤에라도 꼭 따져봐야 할 일이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