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 이탈 현상 심화… 학교당 2008년 18명 → 작년 22명“내신이든 외국어든 경쟁력 없는 학생은 소외되기 일쑤… 영어 내신만 좋은 학생 입학후 ‘산넘어 산’ 가능성”
올해 외고 지원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단순히 외고에 대한 열망만으로 지원을 결심했다가는 입학 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사진은 외국어고 입학시험 장면. 동아일보 자료사진
현재 경기 지역의 한 일반계고에 재학 중인 고2 K 군(17)은 지난해까지 외고에 다녔다. 그는 고1 1학기 중간고사 때부터 일반계고 전학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교생 약 250명 중 150등을 한 게 계기가 됐다.》
중학교 3년 내내 단 한 번도 전교 5등 밖으로 밀려나 본 적이 없는 K 군은 외고에선 평범한 학생이었다. 친구들 중 아무도 그를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교사들의 대우도 마찬가지. 수업시간에 조금만 소리를 내도 혼나기 일쑤였다. 오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지만 오히려 성적은 계속 떨어졌다.
K 군은 “1학년 때 내신 성적이 4등급 이상인 과목이 하나도 없어 외고에 남아있는 게 오히려 대학 진학에 불리하겠다고 판단해 전학을 결심했다”면서 “외고 진학 전 합격했다는 사실에 기뻐만 했지 진학 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게 외고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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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서울의 한 외고에 재학 중인 3학년 A 군(18)은 “실제 전학이나 자퇴를 고려하는 친구를 한 반에서 10명 가까이 볼 수 있다”면서 “고1 2학기 때부터 자퇴하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고2가 되기 전후에 그 수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 외고 내 치열한 경쟁, 학업 스트레스… 이탈 주원인
외고에 진학한 학생들이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런 학생들은 대부분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중학교 때 전교 1등을 하던 학생들만 모이다 보니 그만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지방의 한 외고에 다니다 일반계고로 전학한 3학년 P 양(18)은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기숙사 취침시간에 잠을 자는 친구들보다 복도에 돗자리나 신문지를 깔고 밤새 공부하는 학생들이 더 많다”면서 “내신뿐 아니라 교내 동아리, 축제 등 모든 활동에 경쟁이 일어나 1년 내내 학교 전체가 학생들끼리 소리 없이 싸우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일부 학생들은 “내신이든 외국어든 자신만의 경쟁력이 하나라도 없는 학생들은 철저히 집단에서 소외당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집단 따돌림이나 학교 폭력은 빈번히 일어나지 않지만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게 학생들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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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아진 합격 기준선, 이탈 현상 가속화 부를 수도
외고 입시담당 교사와 입시전문가들은 “이런 외고 이탈 현상은 앞으로 더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외고 입시에 자기주도 학습전형이 도입되면서 “영어 내신 점수 하나로만 외고 진학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늘어났기 때문. 중학교 때 다른 과목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단순히 영어 내신 점수 하나만 좋았던 학생이 외고에 진학한 후 어려운 수업내용을 이해하고 최상위권 학생들만 모인 학교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의 한 외고 입학담당교사는 “영어뿐 아니라 외고에서 진행되는 모든 수업 커리큘럼은 중학교 때 전 과목 최상위권 학생들의 수준에 맞춰져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물론 개인의 노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과연 영어만 우수한 학생이 이런 수업과정을 소화할 수 있을까’란 의문에는 부정적인 입장이다”고 말했다.
올해 외고 지원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단순히 외고에 대한 열망만으로 지원을 결심하는 건 금물이다. 외고 지원 전에 지난해 합격한 학생들의 ‘스펙’, 학교수업 커리큘럼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만약 합격해 외고에 진학했을 때 무리 없이 교육과정을 소화할 수 있겠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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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