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파트’의 처지를 보면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아파트 청약에 당첨만 된다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얼마 전 취재 도중 만난 40대 가장은 “분양 받은 아파트가 지어지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공사 현장 앞에 빌라를 얻어 살았다”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제 ‘부동산 대박 신화’가 서서히 사그라지면서 아파트를 향한 ‘짝사랑’이 식어가고 있다.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손해 본 돈을 보상하라며 입주하지 않고 버티는 사례까지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입주민과 건설사 간의 분쟁이 소송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아졌다. 7월 입주를 시작한 경기도의 한 아파트 입주민은 “지하주차장에 물이 스며들고 단지 내 배수가 잘 되지 않는 등의 문제로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설계도와 다를 뿐 아니라 명백한 부실시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입주민들과 온도차가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너나 할 것 없이 여러 사업장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례가 많아져 관련 부서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전에는 ‘어차피 되팔면 몇 배의 이익이 난다’는 생각에 넘어갔지만 이제는 사소한 문제만 있어도 입주민 전체가 뭉쳐 건설사에 맞서 싸운다. 최근 모 중견건설사는 하자보수비용이 수십억 원대로 급증해 경영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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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보다 가격이 낮아진 일명 ‘깡통 아파트’를 떠안은 입주민들이 ‘어떻게 해서든 내 손해만은 줄이자’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어떤 입주자들은 ‘옆 단지에서 입주율을 높이기 위해 제공하는 혜택들을 왜 우리한테는 안 해주느냐’며 따져 묻기도 한다. 몇몇 변호사들은 이를 악용해 아파트 단지를 찾아다니며 터무니없는 이유를 가져다가 소송을 진행하고 수임료를 챙겨가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할인 분양을 해서라도 미분양을 줄이려는 건설사들은 기존 입주민들의 반발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일각에서는 “상식적으로 새로 나온 자동차 샀다가 시간이 지난 뒤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도 보상해주는 법은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철중 경제부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