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 등재 세계 최대 실내 빙벽 등반 체험
①코오롱등산학교 김성기 팀장이 아이스 피켈 사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②기자가 빙벽등반 체험에 앞서 정운화 강사의 도움을 받아 등반화와 헬멧 등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③이론교육을 마친 뒤 아이스 피켈로 얼음을 찍는 ‘스윙’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코오롱스포츠
가을임에도 긴소매 옷을 고집하기 부담스러운 한낮이지만 7일 실내 빙벽장에 들어서자 사방이 순백 얼음으로 덮인 한겨울 풍경이 펼쳐졌다. “냉방기 10대를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해 실내 기온을 영상 5도 아래로 유지합니다. 빙벽 뒤에 깔린 파이프 속에 든 냉매가 순환하면서 얼음이 녹지 않게 합니다. 매월 전기료만 600여만 원이 나오지요.” 코오롱 등산학교 김성기 팀장의 설명이다. 일단 한 차례 꽁꽁 얼려 놓으면 굳이 기온을 영하로 떨어뜨리지 않아도 얼음은 녹지 않는다고도 했다.
야외 빙벽에 비해 실내 빙벽은 얼음 질이 균질해 낙빙 사고의 위험이 낮다. 그렇다고 쉬이 오를 수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멀리서 보면 빙벽이 밋밋한 벽처럼 보이지요? 다가가 위를 올려다보세요.” 김 팀장의 얘기에 빙벽 밑에 서서 고개를 들어보니 마치 지붕처럼 얼음이 벽에서 툭 튀어나온 구간이 눈에 들어온다. ‘오버행’이라고 부르는 이 구간을 과연 어떤 자세로 올라갈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가장 중요한 장비는 역시 아이스 피켈이다. 양손에 쥔 채 얼음을 찍어서 체중을 지탱할 수 있는 지점을 확보하는 데 쓰인다. 날카로운 상어 이빨 모양으로 발을 얼음에 고정시킬 때 쓰는 크램폰 역시 필수 장비다. 이 밖에 머리를 보호해 줄 헬멧, 방수와 보온 기능성이 있는 두 벌 이상의 장갑, 손으로 돌릴 수 있는 나사못 형태로 얼음에 박아 몸을 고정할 때 쓰는 스크루 등도 필요하다. 아직까지 국내엔 빙벽 등반 인구의 저변이 넓지 않아 수입 제품이 많기 때문에 장비 욕심을 부렸다간 못해도 경차 한두 대 값은 장비 마련 비용으로 들어가기 십상이다.
지상에서 불과 5m. 기자의 팔과 다리 힘으로 중력의 힘을 거스를 수 있는 한계는 어른 세 명의 키를 합친 높이도 안되는 딱 그 높이까지였다. 고작 5m를 버둥대며 올라갔다 내려왔을 뿐인데 방금 5000m급 고봉 등정을 마치고 하산한 것 같은 완전한 체력 고갈 상태였다. 1시간 가까이 온몸의 체중을 버텨내야 했던 양 팔뚝은 금방이라도 어깨에서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손은 후들거려 힘을 줄 수가 없었다. 빙벽을 오르겠다며 버둥거리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본 한 빙벽 애호가가 ‘수고했다’며 간식으로 건네준 미니 소시지의 포장을 벗기는 일도 방한 재킷의 지퍼를 내리는 일도 손이 후들거려 쉽지 않았다. 평소 잘 쓰지 않던 근육을 움직인 탓에 이날 이후 이틀 동안은 양복 재킷에 팔을 집어넣는 아주 단순한 동작도 신음소리를 내지 않고는 할 수가 없었다.
○ 추락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라
전문가들은 기초 체력만 착실히 기르면 50, 60대 여성도 빙벽등반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등반하는 뒷모습을 캠코더로 촬영한 것을 보면서 자세교정을 반복하면 단기간에 실력을 키울 수 있다. 사진 제공 코오롱스포츠
불과 2시간 전 이론 교육 때만 해도 의욕은 넘쳤다. 김 팀장이 전해주는 등반 기술과 요령을 취재수첩에 별표까지 해 가며 꼼꼼하게 적었다. “피켈을 찍는 지점은 팔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보다 5cm쯤 아래에 얼음이 오목한 부분을 택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래야 체중을 실을 수 있어요. 볼록한 부분은 얼음이 잘 깨지니까 피해야 합니다.” 아이스 피켈로 얼음을 찍는 ‘스윙’ 기술의 핵심이다. 팔심을 믿고 얼음을 때리려 들지 말고 손목 스냅을 이용해 얼음을 끌어당기는 기분으로 찍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 비디오로 자세 교정하면 효과 만점
그야말로 오랜만에 ‘탁’하고 피켈이 빙벽을 제대로 파고들어 박혔다. 능히 체중을 맡겨도 될 것 같은 안도감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무작정 빨리 오르려고 키킹 지점을 교육 받은 것보다 높이 잡자 금세 몸의 균형이 흐트러지며 얼음판에서 몸이 ‘주륵’ 미끄러졌다, 다행히 미리 로프로 안전장치를 한 덕분에 바닥에 곤두박질치는 일은 간신히 면했다.
‘하악, 하악’ 내쉬는 거친 숨마다 허연 김이 되어 나올 정도로 실내 기온은 한겨울이지만 쉴새 없이 흘러내리는 땀으로 헬멧 속 머리와 목 등줄기는 금세 번들거렸다. 빙벽에 피켈을 찍을 때 안경 렌즈 위로 튄 얼음이 몸에서 발산되는 열로 인해 순식간에 녹아버려 눈 앞 풍경은 마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것 같은 모습이다.
“키킹을 할 때 얼음을 내려찍지 말고 약간 아래쪽에서 위로 찍는다는 기분이 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의욕만 앞서서 8자 걸음으로 비껴 찍으니까 자꾸 헛발질이 느는 거죠.” 김 팀장의 조언을 따라 몸을 움직여 보려 하지만 이미 마음과 몸은 따로 놀고 있다. 손아귀에서 스르르 힘이 빠지면서 들고있던 피켈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밑에 있던 김 팀장이 잽싸게 몸을 피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기자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빙벽 등반이 힘 좋은 사람의 전유물인 것은 아니다. 기초 체력을 기르고 요령을 익히면 턱걸이를 못하는 여성이나 50, 60대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빙벽 등반을 잘하려면 평소 어떤 운동이 좋을까? 전문가들은 피켈을 쥐는 악력을 기르려면 빙벽 등반에 앞서 실내 암벽 등반을 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한다. 골프 스윙 연습처럼 빙벽을 오르는 모습을 뒤에서 캠코더로 촬영해 재생해 보며 자세를 교정하는 것도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