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주체사상 체계화 ‘김정일 스승’… 수령독재 환멸느껴 망명
1994년 4월 주석단 참석 황 전 비서(가운데)가 1994년 4월 북한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9기 7차 회의에 참석해 주석단에 서있다.(북한 잡지 ‘조선’ 1994년 6월호 게재 사진)
황 전 비서는 탈북 후인 1999년 일본 문예춘추사에서 발간한 회고록 ‘김정일에 대한 선전포고’에서 김정일의 통치술과 전쟁관, 북한의 전쟁 준비 상황 등을 비판했다. 또 같은 해 한국에서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해 북한의 주체사상이 봉건사상으로 변질된 과정과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1989년 11월 북-중회담 배석 1989년 11월 당시 중국을 방문한 1989년 11월 김일성 수행 김일성 북한 주석(가운데)과 리펑 중국 국무원 총리(오른쪽)의 회담장에 배석한 황 전 비서(왼쪽)가 리 총리를 바라보고 있다.
황 전 비서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10월 국가정보원이 “미국 방문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특별보호 대상에서 제외해 관광비자로 미국을 찾았다. 그는 미국에서 강연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핵무기 포기를 대가로 김정일 정권의 독재체제 유지를 보장하는 것은 북한 주민의 인권을 희생시키면서 독재자와 흥정하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중국식 개혁정책을 따르도록 설득할 수 있다면 무력 사용 없이도 북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6년 다시 미국을 방문하려 했으나 노무현 정부는 여권을 발급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2004년 8월에는 한 해외 유명 방송사 기자가 취재 약속을 하고 그를 방문했다가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정보요원들의 제지를 받은 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11월 김일성 수행 1989년 11월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 주석(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덩샤오핑 중국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왼쪽)과 악수하고 있는 뒤쪽에 황 전 비서(오른쪽)가 서 있다.
그는 이때부터 국내 탈북자단체 300여 개를 자신이 위원장인 북한민주화위원회를 중심으로 통합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동아일보 강연에서 “비정부기구가 나서면 (북한 민주화) 비용이 절약되고 효과적이고 도덕적이다. 미국이 파키스탄과 이라크전쟁 등에 1800만 달러를 썼다는데 내게 900만 달러만 줘도 북한 민주화에 성공할 자신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3, 4월 미국과 일본을 방문했으며 미국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강연에서 김정은에 대해 “그깟 녀석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 말했다.
1994년 4월 주석단 참석 황 전 비서(가운데)가 1994년 4월 북한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9기 7차 회의에 참석해 주석단에 서있다.(북한 잡지 ‘조선’ 1994년 6월호 게재 사진)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이 북한 독재체제를 연장시키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오히려 악화시켰다며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남한 내의 친북 사조를 지적했다. 그는 남한 내부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비판의식을 잃지 않았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