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끼는 벤치마킹은 毒… ‘창조적 모방’으로 성장 이끌어
현대카드 사옥에 들어서면 업종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벤치마킹하는 현대카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미국 뉴욕 와인바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현대카드 사옥 내 레스토랑 와인 자판기(왼쪽)와 뉴욕타임스를 벤치마킹한 ‘통곡의 벽’ 스크린. DBR 자료 사진
이는 현대카드 임원들이 뉴욕타임스 본사에 갔을 때 본 독자 댓글 모니터에서 빌려온 아이디어다. 뉴욕타임스는 독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직원들에게 공개하고 있었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은 “자만하지 말고 고객 목소리에 귀에 기울이자는 뜻으로 스크린을 설치했다”고 설명한다. 카드회사지만 신문사에서도 배울 점을 찾는 개방적인 자세는 한때 카드업계 꼴찌였던 현대카드를 우량 기업으로 변모시킨 원동력이 됐다.
#2.최근 신세계 이마트는 백화점 패션 매장을 압축해 옮겨놓은 새 공간을 선보였다. 이마트 성남점에 개설된 ‘스타일 마켓(Style Market)’이 대표적이다. 아디다스, 리바이스 등 40여 개의 브랜드가 이곳에 입점했다. 동시에 제조 직매형 의류(SPA)인 ‘데이즈(daiz)’를 자체 브랜드(PL)로 내놓았다.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자라(ZARA)나 유니클로처럼 한 달에 한 번씩 신상품을 선보인다.
신세계 이마트는 성장 단계에 따라 해외 유통업체를 벤치마킹하며 한국 상황에 맞는 고유의 모델을 개발했다. 왼쪽부터 신세계가 벤치마킹한 일본 이토요카도, 영국 테스코, 미 국 타깃. DBR 자료 사진
○현대카드
현대카드는 기존 신용카드사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성장했다. 다른 카드사와 다른 느낌의 광고를 내보내고, 포인트를 선지급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또 신용카드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했고 대형 콘서트 등을 열었다. 현대카드만의 독특한 문화와 경영방식 중 상당 부분은 회사 바깥에서 얻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다만 새로운 시각에서 혁신적인 것을 관찰하고, 이를 현대카드의 문화에 맞게 이식한다’는 게 현대카드 측 설명이다.
이런 작업의 기폭제가 바로 ‘인사이트 투어(Insight Tour)’다. 정태영 사장과 주요 임원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새로운 마케팅으로 주목받는 곳을 찾는다. 혁신적인 미술관이나 자동차 회사까지 간다. 금융회사는 가급적 가지 않는다. 현대카드는 카드회사라는 업(業)에 대한 정의를 다르게 내렸기 때문이다. 카드사는 고객이 결제하는 카드만 취급하는 회사가 아니라 고객 라이프스타일까지 디자인하는 곳이라는 게 현대카드의 시각이다. 이미영 현대카드 마케팅본부 브랜드실장(이사)은 “카드사는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통찰을 얻어야 한다. 인사이트 투어는 고객의 삶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역점을 둔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제휴사도 벤치마킹 대상이다. 현대카드는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와 제휴해 잡지 ‘마사 스튜어트 리빙’을 판매하는데, 이 잡지사도 인사이트 투어의 방문 대상이었다. 가정주부의 일로 치부되던 살림조차도 TV쇼로 만들어 가치를 창출하는 역발상이 인상적이었다는 것. 이런 노력들이 모여서 고객들에게 더 큰 가치를 주고 브랜드 이미지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마트
이마트는 성장 단계에 따라 각각 다른 전략을 택했다. 1996년 1호점을 열 때는 해외 벤치마킹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국내에 대형 마트라는 업태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상은 선반이 높은 창고형 매장을 운영한 월마트였다. 하지만 한국 문화에 맞지 않았다. 3년 만인 1996년 일본 할인점인 이토요카도로 벤치마킹 대상을 바꿨다. 이후 이토요카도처럼 신선식품에 주력하고 시식행사도 마련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1998년 월마트가 한국에 진출했지만 오히려 이마트에 밀려 실패했다. 현재 이마트는 분야별로 잘하는 대형 할인점들을 골라 혼합하는 ‘하이브리드형 벤치마킹’ 전략을 쓰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소비자 기호가 고급화하는 동시에 다양화하고 있는 데다 국내 할인점 수도 많아져 경쟁 강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자체 브랜드(PL·Private Label) 전략도 벤치마킹을 통해 가다듬었다. 기존 이마트 PL은 저가 이미지가 강했다. 이마트는 ‘PL 종주국’ 유럽을 벤치마킹했다. 영국 테스코나 세인즈베리에서는 PL 제품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이들 회사는 포장 디자인을 단순화해서 가격을 낮췄는데도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했다. 특히 테스코는 PL 브랜드를 세분화해서 프리미엄급에는 ‘테스코 파이니스트’란 이름을 붙였다. 중간 제품은 ‘테스코 노멀’, 가장 저렴한 제품에는 ‘테스코 밸류’란 브랜드를 달았다. 이와 유사하게 이마트도 PL 브랜드를 베스트-이마트-세이브 등 3개로 재편했다. 간결한 브랜드로 상품 인지도를 끌어올리면서 다양한 고객들의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었다. 현재 이마트의 PL 제품은 19개 브랜드 1만8000개로 늘었다.
현대카드와 이마트 벤치마케팅의 공통점은 회사가 놓인 상황에 알맞은 최적화 전략(optimization alignment)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이마트는 월마트 방식이 한국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곧바로 월마트 모델을 폐기했다. 현대카드도 사장실을 개방하는 기업을 벤치마킹하려 했다. 하지만 즉각적인 사장실 개방이 어렵다고 판단해 모든 임원이 특정 시간에 함께 근무하는 형태의 자체 대안을 마련했다. 최고경영자(CEO)가 강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벤치마킹 이전에 사전 학습을 철저히 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모두 매년 한 차례 이상씩 벤치마킹 출장을 떠난다. 벤치마킹 출장을 떠나기 전 자료를 꼼꼼히 준비해서 읽는다.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보고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행을 강조한다는 점도 두 회사가 닮았다. 이마트는 고위임원 벤치마킹 출장 이후 실무자가 똑같은 곳으로 벤치마킹 출장을 떠난다. 실무자 선에서 벤치마킹을 왜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실행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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