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입학사정관 전형에서는 서류 대필(代筆) 업체가 성행해 수사가 진행됐다. 이런 업체들은 요즘 아이들이 쓰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같은 표현을 쓰면서 서투르지만 진솔한 스토리를 엮어 학생 분위기를 풍기고, 역으로 학생 중에는 성인 문체로 세련되게 내용을 구사하는 경우도 있으니, 입학사정관이 대필과 표절을 판별하기 쉽지 않다. 특히 고액의 자기소개서는 기존 것을 재활용하지 않고 맞춤으로 작성하기 때문에 표절 여부를 검색하는 서류검증 시스템이 개발되더라도 피해갈 수 있다.
위조 봉사-자기소개서 대필 횡행
수능 개편안의 또 다른 골자는 현행 수준을 유지하는 B형과 그보다 쉬운 A형이 생기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수능의 변별력은 낮아지고 그 영향력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수능 영어의 경우 2016년부터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의 급수로 대체되니, 대부분의 상위권 학생은 동일 조건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극심한 대입 경쟁에서 필터 역할을 할 다른 요소가 필요한데, 객관성과 투명성이 담보되지 못하는 봉사활동과 자기소개서 등을 신뢰하는 것은 왠지 불안하다.
얼마 전부터 미국 교육부는 사지선다형 시험을 전면 폐기하는 학력평가 개혁에 착수했다. 수능의 경우 일부의 단답형을 제외하고는 오지선다형이다. 이런 선택형 문항은 구시대적 유물처럼 여겨지고, 선택형으로 인해 우리 학생들의 창의력이 저하되었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러나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선택형은 서술형 못지않게 피험자의 고등사고 능력을 측정할 수 있다. 답을 구성해 내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관련성이 깊은 것, 가장 거리가 먼 것과 같이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답을 고르는 능력도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교육청들은 일선 학교가 서술형을 많이 내도록 하기 위해 문항 유형의 비율을 제시하는데 그러다 보니 의미 있는 서술형보다는 사실적인 정보를 묻는 단답식이 주류를 이룬다. 그뿐만 아니라 서술형 채점 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교과서와 노트필기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경우만 정답으로 인정하다 보니 학생들의 사고를 고착화하는 면도 있다. 선택형이든 서술형이든 내용의 타당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문항 유형의 비율을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입학사정관제 속도전은 위험
수능과 내신, 경시와 인증시험처럼 정형화된 요소들의 영향력을 줄이고 학생이 어떻게 학교생활을 했고, 전공과 관련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평가하는 입시의 방향은 분명 바람직하다. 지필검사에 의한 정량적 선발에서 벗어나 잠재력과 소질을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취지는 옳지만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우리 사회가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요소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성숙도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객원논설위원·홍익대교수·수학교육 kpark@hongi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