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 시찰에 동행한 매제 장성택 노동당 국방위 부위원장(뒤쪽 동그라미). 김정은 후계세습 과정에 고모부인 장 부위원장이 어떤 역할을 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그는 1946년 강원도 천내라는 곳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김일성대에 입학해 김경희와 한 반이 되면서 운명이 바뀐다. 말솜씨가 좋은 호방한 미남형인 장성택에게 반한 김경희와 결혼하면서 일약 ‘부마’ 자리에 올랐다. 이후 김정일의 눈에 들기 위해 젊어서부터 열성을 다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 외교담당 과장 시절인 1970년대 중반엔 김정일에게 원기회복관이라는 명목으로 호화 관저를 지어 바치기도 했다. ‘충성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 외교관들이 마약을 밀매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장성택이 주요 국가직책에 자기 사람을 심는 것에 불안을 느낀 김정일이 ‘분파행위’와 ‘호화방탕행위’ 명목으로 좌천시킨 것. 장성택의 사람도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지방으로 실각됐다.
그러다 2006년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권했다. 두 번씩이나 김정일의 분노를 사 밑바닥 삶을 살아본 장성택은 이후 살아남기 위해선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한다. 따라서 김정은 후계구축 과정에서도 김정일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몸을 최대한 낮추어 절대 충성할 것으로 보인다는 후문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