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으로 마음열고, 긍정적 에너지 표출의 길 마련해주자
특목고 보내려던 딸, 사흘간 가출하다
중2 박모 양(14)의 어머니 이모 씨(43·서울 양천구). 그는 초등학교 때 학급 회장을 도맡았던 딸을 특목고에 보내고 싶었다. 외동딸이라 기대가 각별한 만큼 더 엄격해졌다. 공부하기 싫어 TV를 보는 딸에게 이 씨는 “남들 못 가는 학원까지 여러 개 보내면서 네 공부를 도와주고 있는데 더 열심히 해야 되지 않겠느냐” “성적이 떨어진 것을 보니 공부 안 하고 논 것 아니냐”며 다그쳤다. 공부에 소홀해지거나 불량한 학생들과 어울릴까 걱정돼 중학교 입학 전까진 휴대전화도 사주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까지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던 박 양은 중1 여름방학부터 학원에 빠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화장을 하고 밤늦게까지 남자 고등학생들과 거리에서 놀기를 즐겼다. 휴대전화를 빼앗자 상황은 악화됐다. 쪽지 하나만 남기고 사흘간 연락을 끊은 채 친구들과 바닷가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숨 막히게 살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이젠 놀아야겠다”는 게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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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딸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밤 12시가 넘어 들어온 딸을 보면서 “네가 늦게 들어오니까 엄마가 얼마나 속상한지 모른다”고 하고, 기말고사에서 성적이 평균 15점 이상 떨어졌어도 예전처럼 윽박지르는 대신 “공부하기가 많이 짜증났나 보다”라고 말했다. 과거에 강압적으로 굴었던 사실은 직접 사과하기가 쑥스러워 메모지에 ‘엄마가 미안했어’라고 적어 아이의 책상에 붙여 놓았다.
석 달쯤 지나자 박 양이 서서히 변했다. 집에 들어오면 안 하던 인사를 했다. 밤늦게 놀다 오는 날이 주중 4회 이상에서 1, 2회로 줄었다. 최근엔 이 씨에게 “내가 놀더라도 나쁜 짓은 안 하면서 놀고, 공부도 때 되면 할 거니까 걱정 말라”는 말을 남겼다.
“왜 사회는 잘하는데 수학은 그 모양이니?”(×)
“다른 과목보다 사회를 더 잘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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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성적과 학업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모의 말에서 느껴지면 부모에게 마음을 연다. 지지와 공감을 얻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학업 외에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을 때도 이런 방식으로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알아내 대처할 수 있다.
아들의 가방에서 담뱃재를 발견하다
운동이나 취미생활 같은 비교과 활동을 적극 이용하는 것도 학업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좋은 방법이다.
중2 아들을 둔 정모 씨(46·경기 안양시)는 4개월 전 우연히 아들의 가방 속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담뱃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정 씨는 비슷한 경험이 있던 친구의 조언을 듣고 나서 아들을 다그치지 않고 유심히 관찰했다. 어떤 날은 집에 돌아온 아들의 몸에서 희미하게 담배 냄새가 날 때도 있었다. 아들이 담배에 손을 댔음을 짐작한 정 씨는 요즘 어떤 고민이 있는지부터 물었다. “얼마 전 새로 다니기 시작한 영어학원의 수업이 너무 지루하고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 씨는 학원을 끊고, 그 대신 아들이 좋아하는 수영수업에 등록시켰다. 두 달 정도 지난 뒤 정 씨가 담배와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자 아들은 “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친구들이 담배를 피우기에 몇 번 따라 피웠는데, 수영을 다니면서부터는 어느 순간 안 피우게 됐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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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활동이 자녀에게 의무처럼 느껴지면 안 된다. 좋아하는 운동이나 활동이 있다면 무엇인지 물어본 뒤 자녀가 긍정적인 의사를 밝힐 경우 진행해야 한다.
도움말=이윤조 서울시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상담팀장, 김승수 서울 대왕중 교감, 심선이 가정선교원 홈센터 전문상담사
장재원 기자 jj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