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경매사에서 컬트 와인 ‘아리에타’ 오너로 변신한 프리츠 해튼과의 유쾌한 만남!
▲ ‘아리에타’ 라벨에 그려진 악보. 베토벤 마지막 소나타의 악보다.
베토벤의 3대 피아노 소나타가 뭐냐고 물으면 “비창, 월광, 열정”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다. 학창 시절 음악 수업 시간에 배운 기억이 있어서다. 그런데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가 뭐냐고 묻는다면 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비창’같은 표제적인 애칭이 없어 오로지 작품 번호로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는 ‘제32번 C단조(Op. 111)’다. 그런데 이 피아노 소나타는 다른 소나타와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피아노 소나타는 4악장으로 구성되는데 얘는 2악장으로만 돼 있기 때문. 자신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마지막 악장에 대해 베토벤은 ‘아리에타’(Arietta)라고 표현했다. 아리에타는 ‘작은 아리아’를 뜻한다.
▲ 크리스티 와인 경매사에서 컬트 와인 ‘아리에타’의 오너로 변신한 프리츠 해튼이 자신이 만드는 와인 병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베토벤의 ‘아리에타’에 영감을 받아 만든 유명한 컬트 와인이 있다. 세계적인 와인 경매사로 이름을 날린 해튼(Fritz Hatton)이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생산하는 동명의 와인 ‘아리에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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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한 지 3주 만에 경매를 진행하는 매니저가 된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와인 경매사로서 능력을 발휘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와인 생산자들과의 친분도 만들게 됐는데, 그의 일생을 변화시킨 인물은 나파밸리에서 화이트 와인 생산자로 유명한 존 콩스가드다.
“밤 9시30분에 콩스가드에게 전화가 걸려 왔어요. 자신이랑 레드 와인을 같이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냐고요. 다음날 오전 6시에 살 수 있는 좋은 포도가 있는데 돈을 지불하고 계약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얼마나 드냐고 물었더니 포도를 사는데 600달러, 배럴을 사는데 200달러해서 총 800달러가 필요하다더군요. 그렇게 해서 1995년 첫 와인을 만들게 됐어요.”
▲ 아리에타 온 더 화이트 키’를 음미하는 프리츠 해튼.
자신의 와인에 ‘아리에타’라는 이름을 붙인 사연 역시 흥미롭다. 의기투합한 콩스가드와 해튼, 그리고 콩스가드의 음악하는 친구 등 세 사람은 어느 날 새벽 기분 좋게 취한 상태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는데(해튼 또한 아마추어 파아니스트다) 그 곡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32번 작품번호 111이었고, 연주를 끝낸 순간 시계 바늘이 새벽 1시1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 숫자 111에 의미를 두게 됐고, 이 소나타의 마지막 악장에 붙은 애칭 ‘아리에타’로 이름을 정한 것. 라벨에 그려진 악보 역시 이 소나타의 악보다.
최고 품질의 포도를 사들이는 아리에타는 2006 빈티지부터는 미국 최고의 컬트 와인으로 꼽히는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의 와인 메이커 앤디 에릭슨이 양조를 맡아 더욱 매력적인 와인으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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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어요. 자신이 테드 코펠이라는거에요. 누구냐고 다시 물었죠. 그랬더니 진짜 테드 코펠이라는거에요. 와우. 레스토랑에서 ‘아리에타 베리에이션 원’(Arietta Variation One)을 마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1케이스(12병)를 주문하고 싶다는 겁니다. 셀러브러티 마케팅에 포커스를 두지는 않지만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몇 달 후 또 테드 코펠에게 전화가 걸려왔어요. 근처에 왔는데 들려도 되냐고요.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아리에타는 네 종류의 와인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유일한 화이트 와인인 ‘아리에타 온 더 화이트 키’(Arietta On the White Keys)는 소비뇽 블랑과 세미용을 블렌딩한다. 야채 요리와 근사하게 어울리는 맛이다.
▲ 라벨에 현악 4중주에 쓰이는 악기가 그려진 ‘아리에타 콰르텟’.
테드 코펠이 좋아하는 ‘아리에타 배리에이션 원’(Arietta Variation One)은 시라와 메를로의 블렌딩이다. 시라와 메를로의 결합이라는 독창적인 블렌딩에서 나오는 조화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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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광화문 인근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해튼은 보타이를 하고 있었다. 크리스티에서 경매사로 활동하다 돌연 안식년을 내고 3년 간 음악을 공부한 뮤지션의 열정이 반영된 것 같았다. 살짝 물어보니 “경매할 때 동작이 크고 많이 움직여서 일반적인 타이보다는 보타이가 편해 즐겨 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뒤에 붙이는 말이 걸작이다. “사실 보타이는 드라이 크리닝을 많이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
글·사진 이길상 와인전문기자(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정회원 juna109@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