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민지 부모 여창국-임수영씨 단독 인터뷰…“내 딸 민지를 말한다”
여민지 어머니 임수영 씨(왼쪽)와 아버지 여창국 씨가 17일 김해 자택에서 가진 스포츠동아와 인터뷰에서 여민지가 딴 메달 등을 들어 보이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김해 |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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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전 케이크 놓고 가족 출정식
“엄마, 추석선물은 4강으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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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간호조차 못해 늘 미안해
매일매일 축구일지 쓰는 ‘성실파’
힘들수록 더 강해져 꼭 우승할 것소중한 딸이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해주고픈 말이 무엇이냐고 묻자 결국 엄마는 꾹 참았던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냥, 너무너무 잘했다고…. 우리 아기, 너무 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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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런 경기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네요. 우리 태극전사, 그리고 딸, 너무도 사랑하고 고맙다고. 또 감동이었다고 전해주고 싶어요.”
○추석 여기서 보내고 돌아갈게
여민지가 트리니다드토바고 현지 입성에 앞서 미국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부부는 의정부 친척 집에서 케이크 한 개를 놓고 가족, 친지들과 함께 딸을 위한 조촐한 출정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딸은 한 가지 약속을 했단다.
“엄마, 아빠! 나 그곳에서 추석을 잘 쇠고 돌아올게.” 그저 어리게만 보이던 딸이 어엿한 숙녀가 됐다는 걸 새삼 느꼈던 순간이다. 트리니다드토바고 통신이 썩 좋지 못해 부부는 인터넷 미니홈피를 통해 주로 대화한다. 화상 대화도 가끔 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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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조금 달랐다. 딸의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았기에 걱정을 감출 수 없었다. 나이지리아전 킥오프를 기다리는 동안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너무 자신만만해 하더라고요. 그게 더욱 불안했죠. 차라리 빨리 끝났으면 했어요. 하지만 막상 시작하니 온 몸이 덜덜 떨리고 불안하고. 그냥 두 손을 마주잡고 기도드리게 되더라고요.”
○시련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늘 밝은 모습만 있는 게 아니죠. 아름다웠다는 표현들을 하시지만. 다쳤을 때, 그 과정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다면. 어휴, 다시는 되돌리고 싶지 않아요.”
부부에게는 여민지의 무릎 부상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 부상의 악령은 잊혀질 만 하면 또 한 번 찾아와 괴롭혔다. 창원 명서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축구화를 신은 딸은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공을 찼지만 6학년 때 처음으로 쓰러졌다. 병원 진단 결과, 성장통이었다.
조금 안심은 됐지만 부부의 의견이 처음 엇갈렸다. 아버지는 “그러다 두 다리를 영영 쓰지 못하면 어쩌려고”라며 역정을 냈고, 엄마는 반대였다. “아기 아빠가 딸이 아픈데도 축구를 하는지 지켜보려고 몰래 학교를 찾아가더라고요. 그럼, 감독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서 ‘오늘은 민지를 빼고 경기를 하라’고 말씀드렸어요.”
성장통을 훌훌 털어버린 여민지는 함안 함성중학교 입학 후에도 쑥쑥 자랐다. 14세 때 19세 대표팀에 뽑힐 정도로 최고 실력을 뽐냈다. 그러던 중, 3학년 때 강진 춘계연맹전에서 반월상 연골 부상과 함께 오른 무릎 십자인대가 크게 손상됐다. “집사람이 매일 눈물을 흘렸어요. 전 출근하느라 제대로 간호하지도 돌보지도 못했는데, 그게 딸한테 가장 미안했죠.”
함안대산고에 들어간 뒤에도 딸은 또 무릎을 다쳤다. 월드컵 출전을 한달 여 앞두고 18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된 여민지는 한중일 친선 대회에 앞서 강원도립대와 연습 경기를 하다 통증을 느꼈다. 무릎 십자인대 1/5 파열. 이전까지 아파도 내색하지 않던 딸은 처음 눈물을 부모 앞에서 흘렸다. “‘아프다’는 소리를 들은 것도 처음이었죠.”
이번에는 아버지가 간병인을 자청했다.
“예전에 마음의 빚이 있어서 그 때는 제가 간호를 했죠. 딱 이틀 간 병실에서 민지를 돌봤는데, 처음엔 ‘월드컵에 못나갈 수도 있겠다’고 걱정하던 딸이 금세 표정이 밝아지더라고요. 제 딸이지만 의지가 저토록 강할 줄은 몰랐죠. ‘부정(父情)을 느낀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최고의 선수로, 최고의 지도자로
아직까진 푸릇한 여고생이지만 여민지의 목표는 또렷하다. “민지가 (지)소연이 언니처럼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수가 당장의 계획이라면 먼 훗날 지도자로 성장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었지만 일단 주변 믿는 분들과 상의를 하고, 본인이 원하는 최상의 길을 열어주고 싶어요. 딸이 축구를 시작한 것처럼 말이에요.”
한국 축구 영웅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를 특히 좋아하는 딸이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부부가 믿는 까닭은 사실 또 있다.
다름 아닌 초등학교 시절부터 딸이 꾸준히 작성해온 축구 일지 때문이다. 마치 일반인들의 추억을 담은 일기장처럼 여민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지를 썼다. “딸의 축구 일지를 보면 정말 감탄하게 되요. 지금도 아마 쓰고 있을 겁니다. 하루하루 일과를 되돌아보고 자신을 한 번 더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아버지) “축구 일지를 보면 뿌듯해요. 우리 딸이 성실해요. 아무리 피곤해도 꼼꼼하게 색연필로 글자를 적어 내려가는데. 숙소를 방문해보면 모든 게 차곡차곡 정리돼 있어요.”(어머니)
일지뿐만 아니라 미니 홈피에서도 여민지를 엿볼 수 있다. ‘성실함+꾸준함=성공’, 프로필 대신 적어놓은 좌우명이다. 또 월드컵 출정을 앞두고 다이어리에 마지막(8월 25일자)으로 적은 내용은 ‘내 자신만이 이겨낼 수 있는 그런!! 마음 강하게 먹자!’였다.
“잘할 겁니다. 힘들면 힘들수록 더욱 강해지니까요. 우리 딸, 그리고 태극 소녀들이 모두 한국 축구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 분들께서 기원해주셨으면 해요.”
부부는 딸이 가장 좋아하는 ‘임수영표, 갈비찜’을 차려놓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당당히 개선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김해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