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훈 씨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첫 5급 사무관에 합격
“난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 가족, 친구, 동료, 교수님들… 좋은 사람들로 가득하니 이 행복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
14일 행정안전부로부터 ‘중증장애인 특별채용시험 5급 공무원 합격’ 통보를 받은 지정훈 씨(31)의 미니홈피 첫 화면에 나오는 글이다. 행안부가 취업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2008년부터 시행해온 ‘중증장애인 특별채용시험’에서 5급 공무원 합격자는 3년 만에 지 씨가 처음이다. 방송통신(통신기술) 분야 5급 시험에 응시한 지 씨는 12월부터 특허청 정보통신심사국에서 일한다. “장애를 가진 부산 사나이가 공무원이 됐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지 씨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자 지체장애(상지) 3급 장애인이다. 어눌한 말 뒤로 긍정의 기운이 느껴졌다.
“대학교(경성대) 대학원(부산대)에서 컴퓨터 공부(컴퓨터공학 전공)만 하다가 사회에는 처음 나갑니다. 합격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면접도 발표도 시험을 보면서 그냥 매사에 긍정적으로 임하다 보니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아요. 전 무지 낙천적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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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낙천적으로 살기까지 그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태어난 지 1년도 안 돼 뇌성마비에 걸려 학창시절 내내 언행이 부자연스러웠다. 그래도 남들과 똑같이 공부하고 싶어 일반 학교에 진학했지만 팔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노트 필기 한 번 제대로 못 했다. 필기를 하지 않아도 공부할 수 있는 컴퓨터공학과. 그것이 지 씨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지 씨는 지난달 ‘유전체 서열 분류기법을 이용한 프로그램 유사도 비교’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도 땄다. 그는 함께 합격한 13명의 동료 장애인과 함께 다음 달 4일부터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두 달간 연수를 받는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묻자 그는 “어제까지 아들 취직 걱정을 하시던 부모님에게 이제야 떳떳한 아들이 됐다는 게 기쁠 뿐”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