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꼴찌’ 서울대 야구부 이광환 감독돌멩이에 물웅덩이… 열악한 운동장 사정에 부상 일쑤“1승보다 학생들 안전이 우선” 무보수로 팀맡아 구슬땀
야구 배트 대신 든 삽이 어색하다. ‘만년 꼴찌’ 서울대 야구부 감독으로 온 이광환 감독이 24일 서울대 야구장에서 삽으로 흙을 퍼 웅덩이를 메우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 감독은 당장 이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다 다친 사례를 모아봤다. 4년간 53건. 코뼈가 부러지거나 팔다리 골절상을 입는 등 비교적 심각한 부상으로 캠퍼스 상해보험금을 받은 사례만 모은 것이라 실제로 다친 적은 이보다 훨씬 많다. 23일 이 감독은 서울대 야구 동아리 연합인 ‘스누리그’ 소속 28개 야구 동아리 대표들을 불러 모았다. “운동하다 너희들 다친다. 야구를 사랑하는 학생들부터 힘을 모아 스크럼을 짜고 제대로 된 야구장 한번 만들어보자.”
이 감독이 무보수로 일하는 서울대 야구부는 만년 꼴찌다. 1977년 야구부가 재창단된 뒤 27년간 1무 199패의 기록을 이어가다 2004년 대학야구 추계리그 예선에서 신생팀이던 광주 송원대를 상대로 기적적인 첫 승을 거뒀다. 2005년부터는 다시 56연패 중이다. 대회 성적은 만년꼴찌지만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서 야구의 인기는 대단하다. 야구 동아리만 28개, 회원은 1000명이 넘는다. 이렇게 많은 학생이 열악한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다 크게 다치기라도 할까봐 이 감독은 삽질에 ‘영업’도 불사했다. 대기업을 쫓아다니며 서울대 보조운동장에 인조잔디를 깔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부끄럽지 않았다. 이 감독의 호소에 야구 동아리 학생들은 보조경기장 시설 개선을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 감독의 꿈은 서울대 야구부의 1승이 아니다. 9월부터 추계 대학야구 리그가 시작되지만 우승보다는 학생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야구를 했으면 하는 게 소박한 바람이다. “서울대 학생이라고 하면 자기공부밖에 모르는 모범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 실력은 좀 떨어지지만 팀플레이인 야구를 하면서 협동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뿌듯한데.” 그의 책상 옆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인조잔디를 그려 넣은 운동장 사진이 붙어 있다. “학생들이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운동장은 꼭 마련해놓고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