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우회로에서 발견한 새 길
풋내기 권투선수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 건축가로 도약한 안도 다다오의 삶이다. 애당초 원했던 여정을 접고 우회로를 선택한 것이 더 큰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우리의 머리는 생각을 아무 쪽으로나 바꿀 수 있게 하기 위해 둥글다는 말처럼, 자신이 꿈꿔오던 여정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을 때 다른 길로 돌아가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도 생활의 지혜임을 일러준다.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은 소설가가 되겠다고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지만 대학생활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무슨 일을 해도 ‘이건 아닌데’ 싶은 마음으로 방황하던 나날 속에 여름방학을 맞은 스무 살 청춘. 고향집에 내려간 그는 우연히 선배작가의 소설을 한 자 한 자 공책에 옮겨 적는 일에 빠져들면서 처음으로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다. 직선코스에서 벗어나 잠시 숨고르기를 했던 그 순간. 이때를 작가는 훗날의 풍부한 자양분이 된 시간으로 떠올린다.
‘내가 어느 지점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었건 간에 그 지나간 것들은 오늘 여기까지로 오는 길이었으며, 여기 내 앞에 놓여있는 이 시간 또한 십년이나 이십년 뒤 짐작도 못 하겠는 그 시간들로 가는 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이제야 내 것으로 받아들인다.’(신경숙의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이들은 내 뜻대로 안 되기 때문에 삶이 팍팍하다고 앙앙대는 우리를 향해 가끔은 정체나 퇴보같이 보이는 여정을 감수해도 괜찮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우회 전략(Oblique Strategies)’이란 작품을 만든 영국 아티스트들이 있다. 창작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고갈됐을 때 실마리를 푸는 다양한 전략을 담은 카드를 통해 유연한 자세를 강조한 작업이다. 문제가 얽힌 상황에서 정면돌파보다는 흥미로운 우회로를 찾는 것이 해결책이란 점을 알려준다.
“흐르는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라./풀과 돌, 새와 바람, 그리고 대지 위의 모든 것들처럼/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고미석 전문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