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동엽-착한 사제는 영성과 인간성 다 아울러야
사목 대담집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펴낸 정의채 몬시뇰-차동엽 신부
가톨릭계 원로인 정의채 몬시뇰(왼쪽)과 베스트셀러 ‘무지개 원리’의 저자이자 미래사목연구소장인 차동엽 신부가 18일 한국 사회와 교회 등을 주제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8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원로 신부 사택에서 만난 가톨릭계 원로 정의채 몬시뇰(85)은 느릿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대통령의 말은 중천금인데 너무 쉽게 나왔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오늘 주인공은 몬시뇰’이라며 말을 아끼던 차 신부는 통일 문제가 언급되자 자신의 가족사를 털어놓았다. “기자였던 아버지는 6·25 때 공산당에 끌려가 부역자로 몰려 고난을 겪었고 북쪽의 (다른) 어머니를 기다리다 알코올 중독자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모세가 후손들에게 남긴 것은 ‘잊지 말라, 기억하라’의 두 단어였음을 강조했다. “유대인 젊은이들은 옛 고난을 재현하는 파스카 축제를 통해 쓴 풀을 씹고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먹으면서 3200년 전 고난의 엑소더스를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로부터 미래를 배우는 데 실패했습니다.”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두 신학자는 30여 년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젊은이’와 ‘미래’라는 키워드에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사제의 본질은 하느님의 사람, 항상 기도하며 희생의 길 가야
차 신부는 “케네디 대통령이 61년 평화봉사단을 창설해 젊은이들을 전 세계에 파견한 사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최근 사회 문제로 떠오른 청년실업 문제의 대안이고, 그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몬시뇰도 “15만∼20만 명의 젊은이를 적절한 비용으로 전 세계에 내보낸다면 국가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담집에는 두 신부의 8차례에 걸친 대담, 정 몬시뇰의 사목 인생과 교회사에 얽힌 사연 등을 담았다. 정 몬시뇰은 2008년 타계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이탈리아 유학 뒤 귀국한 그는 1964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소설 ‘파시’를 읽으면서 그동안 어눌해진 우리말을 고치려 했다. 그가 만난 박 선생의 첫말은 ‘서양승방(僧房)에 있는 분도 내 소설을 읽냐’ ‘다른 대목은 몰라도 죽음을 다룬 내용만은 자신 없으니 믿지 말라’였다.
“자청해 6개월간 박 선생에게 교리를 가르쳤지만 영세를 받기 2주 전 ‘죽음의 의미가 다가오지 않는다’며 포기하더군요. 그 후 박 선생은 영세를 받았고, 40여 년 뒤 임종 직전 병자성사(죽는 이들을 위한 마지막 예식)를 해 하느님의 섭리가 참 오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美평화봉사단 해외파견 사례-청년실업 돌파구로 검토 필요
“착한 사제는 근원에 충실한 사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영성과 인간성, 둘 중 어느 하나도 잃어버려서는 안 되죠. 사제의 역할은 미래라는 시간을 내다보면서 그 시대마다 서려 있는 하느님의 구원섭리를 평신도에게 전해야 합니다.”(차 신부)
“사제는 사람과 하느님의 중재자인데 본질은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거죠. 이걸 잃어버리면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이나 다름없죠. 이 길을 걷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서로 사랑하라, 용서하라’고 했고, 불교의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얘기했죠. 내 경우 머리카락 하나도 하느님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은총임을 절감합니다.”(정 몬시뇰)
김갑식 기자 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