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우리 민족에겐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살면 된다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과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도 나 못지않게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들의 믿음을 비판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관용과 공존의 지혜다.
종교에서는 이런 관용과 공존의 아름다운 전통을 가진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적 갈등과 마찰을 겪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일은 즐겁지는 않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주장을 보면 역사관 세계관 인생관이 나와 너무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런 것이 이념 갈등은 아니지만, 적어도 같은 대한민국에서 내가 아는 세상과 너무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사람에게 내가 아는 지식과 논리로 설득과 소통을 시도해 보았지만 그때마다 느끼는 점은 넘지 못할 장벽이었다. 아마 그들도 나에게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생각의 차이가 지식과 정보의 차이 때문이라면 정확한 정보 제공과 소통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의 차이가 가치관과 신념의 차이 때문이라면 소통과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알라신을 믿는 사람에게 부처님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일과 같다. 오히려 그런 설득과 대화 시도가 갈등과 불신의 불씨를 더 키우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의 이념 갈등은 소통하고 화합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공존의 지혜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 공존이 가능하다면 좌우 이념 갈등도 그렇게 극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살면서 자기주장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태도가 공존의 지혜이고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종교와 이념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종교적 차이는 예외도 있지만 결국 개인적인 문제다. 천국을 가든 극락을 가든 각자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된다. 이념 차이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법과 제도의 문제가 된다. 우파가 집권하면 좌파의 가치가 훼손되고, 좌파가 집권하면 우파가 원하는 세상에서 멀어진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 전 한국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