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전 스티브 칼턴이 떠오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류현진을 보면 1972년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한 ‘레프티’ 스티브 칼턴(사진)이 연상된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59승 97패(승률 0.364)로 리그 최하위였다. 꼴찌 팀에서 사이영상 수상자가 배출되는 이변이 나온 것이다. 류현진과 칼턴은 왼손 강속구 투수란 점에서도 닮았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역대 꼴찌 팀에서 최우수선수(MVP)가 딱 한 차례 배출됐다. 올해 명예의 전당에 가입한 안드레 도슨으로 1987년 시카고 컵스에서 수상했다. 당시 컵스는 76승 85패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최하위였다.
칼턴은 필라델피아에서 나 홀로 마운드를 지키며 27승(10패)을 거뒀다. 이는 팀 승리의 절반에 가까운 45.7%나 된다. 나머지 투수가 거둔 승수는 32승인데 두 자리 승수를 올린 투수는 당연히 없었다. 칼턴 외에 다승 투수는 버키 브랜든으로 7승이었다. 빠른 볼과 칼날 같은 슬라이더가 주무기였던 칼턴은 사이영상 4차례 수상, 통산 329승을 기록하고 1998년 은퇴한 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현재 류현진은 팀 승리의 36.5%를 책임졌다. 한화에서 류현진 다음의 다승 투수는 유원상으로 5승이다. 하위 팀에서 다승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 자체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평균자책, 탈삼진 등은 본인의 능력과 직결되지만 다승은 팀 전력과 맞물려 있다. 역대 15명의 20승 투수가 승률 5할 이상의 팀에서 배출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최근 20년간 20승 투수 가운데 팀 승리의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선수는 1990년 해태 선동열이다. 22승을 거뒀고 팀은 68승 49패로 팀 승리의 32.3%였다. 두산 리오스는 2007년 22승을 올려 31.4%를 마크했다.
앞으로 류현진이 몇 승을 추가할지는 점치기 어렵다. 한화의 전력이 안정돼 있지 않아서다. 하지만 류현진은 당장 메이저리그에 입문해도 두 자리 승수를 거둘 수 있는 투수란 점만큼은 확실하다.
문상열 기자 로스앤젤레스에서 moonsytexas@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