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는 피하랬다고, 대기업들은 정부의 ‘대기업 때리기’에 고용과 투자를 늘리고 하청 거래 관행을 개선하기로 약속해 위기를 넘기려 할 것 같다. 정부는 “압박전술이 통했다”고 반길 일이 아니다. 오히려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도 별 수 없다’는 평가를 두려워해야 한다.
역대 정권은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면 대기업을 두드려 서민과 중소기업의 분노가 대기업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정부가 대기업 압박을 선도해 지지도를 올려보겠다는 전략이다. 6·2지방선거 패배 후 두 달간 MB 정부의 갑작스러운 ‘친서민’ 행보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MB 정부는 광우병 촛불사태 때와 지방선거 패배 후 소통이 부족했음을 자책했다. 그런데 소통을 강화한다면서 친서민을 위해 기업과의 소통을 무시하는 건 모순이다. 정부가 필요에 따라 소통 상대를 고른다면 이 또한 포퓰리즘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정부 당국자의 현실진단과 해법이 뛰어나다 해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성과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반대파를 양산하게 된다. 4대강 사업도 당위성과 적합성에도 불구하고 대운하사업 논의 초기에 정권 내 일부가 밀실에서 결론을 다 내린 듯이 말하고 다녀 화(禍)를 자초했다. 정부의 소통 실력을 보면 지금 정부가 만들고 있는 친서민 정책도 실망을 낳지 않을까 염려된다. 서민과의 소통 부족으로 서민이 정작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지 못하고, 대기업과도 소통이 부족해 엉뚱하게 대기업 괴롭히기로 흐르지 말란 법이 없다.
정부가 ‘대기업 길들이기’ 발언을 쏟아내자 검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이 그동안 모은 정보로 기획 사정(査正)에 나선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MB 정부는 그 정도 수준’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의미다. 대체 어떤 정책이기에 칼로 압박한다는 건가. 법치 정부가 그동안 기업의 잘못을 법규에 따라 처벌하지 않고 훗날 관치에 활용하기 위해 메모만 한다는 말인가. 선진화를 내세운 정부라 창피해서라도 소문을 부인했어야 했다.
정부는 대기업의 횡포와 방종에 대한 감독도 법규에 맞게 하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도록 설득해야 한다. MB 정부 후반기가 기업과 불통 상태로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