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의 한 은행에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는 신용카드를 신청했다. 300달러에서 최고 5000달러까지 예금을 하면 예금 금액만큼 월 사용한도를 주는 카드였다. 카드로 100달러를 사용하면 자동적으로 100마일의 마일리지가 적립된다. 5000달러짜리 개인수표와 함께 신청서를 보냈더니 일주일 후 은행 계좌에서 5000달러가 빠져나갔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는데도 카드가 오지 않았다. 참다못해 은행에 전화를 해보니 아직 카드 발급 승인이 안 났다고 했다. 상담원에게 “돈을 빼가지 않았느냐”고 따지자 은행 규정이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신청서를 보낸 지 두 달이 다 돼 카드가 도착했다. 수많은 고객들로부터 미리 받은 돈으로 얼마나 많은 이자를 남기겠는가.
높은 금리를 내면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은행에 대출을 신청하면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2, 3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미국인들은 한 달 만에 대출 승인이 나면 빠른 결정을 고마워한다. 게다가 자영업자나 중소기업들은 은행돈을 쓰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춘 것으로도 부족해 채권 매입 등을 통해 천문학적 규모의 달러를 시장에 풀었지만 중소기업엔 은행 문턱이 너무 높다. 오죽하면 미국 행정부와 민주당이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을 활성화하기 위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을까.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을 풀어주지 않으면 경기회복과 고용창출이 지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은행들의 이런 이기적 영업 행태는 10년 넘게 지속됐던 월가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자유방임’이 낳은 결과다. 지난달 21일 발효된 금융개혁법은 이런 월가의 자유방임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법은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들도 담겨 있다. FRB 내에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을 신설해 은행들의 고금리 관행이나 터무니없이 높은 신용카드 수수료 등을 바로잡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위기 재발을 막고 월가를 개혁하기 위한 목적으로 취임 초부터 금융개혁법안에 공을 들였다. 작년 6월 의회에 법안을 제출했지만 1년이 지난 지난달 15일에야 의회 통과가 마무리됐다.
공화당이 감독당국의 권한이 너무 비대해진다며 거세게 반대하면서 상원에서 지루한 논쟁이 계속됐다. 공화당의 뒤에는 금융개혁법안을 무산시키려는 월가의 끈질긴 로비가 있었다.
신치영 뉴욕특파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