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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방형남]힐러리가 시동 건 ‘北정권교체’

입력 | 2010-07-31 03:00:00


뜻밖의 손님이 그제 필자를 찾아왔다. 한국에 정착한 지 4년 된 탈북자 김인화(24) 인경 씨(22) 자매와 친구 박순희 씨(24)였다. 박 씨는 두 살짜리 딸을 안고 왔다. 그들이 발걸음을 한 계기는 6년 전 필자가 쓴 ‘6월의 혼란’이라는 제목의 칼럼이었다.

당시 필자는 남북 간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진단하면서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중국에서 숨어 지내고 있는 탈북 소녀 3명을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 1200만 원을 모금하고 있다’는 소식을 짤막하게 언급했다. 칼럼이 나간 다음 날 서울 강남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동아일보 독자 한 분이 시민연합에 1200만 원을 보내왔다. 덕분에 세 소녀는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 2006년 2월 한국 땅을 밟았다.

여성 탈북자 3명의 감사와 눈물

김 씨 자매와 박 씨는 자신들을 자유의 땅으로 이끌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를 위해 필자를 찾아온 것이었다. 중간에서 연결 역할을 했을 뿐이지만 시민단체와 독지가가 힘을 합쳐 구해낸 3명의 탈북자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김 씨 자매는 그동안 열심히 공부해 중입 고입 대입 검정고시에 차례로 합격했다. 고충 끝에 대학 입시 도전은 2년 뒤로 미뤘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를 내는 임대아파트를 3000만 원 전세로 바꾸는 게 더 급해 미장원과 식당에서 일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다. 그만하면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셈이다.

김 씨 자매와 박 씨는 이어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부모 형제 없이 힘들게 지내는 탈북자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마침 중복이어서 삼계탕을 주문했더니 자매는 “처음 먹어본다”며 국물까지 깨끗이 비웠다. 박씨는 못 먹어서 키가 작은 자신과는 달리 딸이 남한 아이들처럼 크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북한에서 지낼 때 굶어죽은 또래들을 목격한 일, 공개 처형장에 동원돼 총살 장면을 지켜본 충격, 남한에서 살면서 절감하게 된 북한의 비참한 현실 등 가슴 아픈 사연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비슷한 나이의 자식을 둔 필자는 속으로 울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북한의 김정일은 부모 품에서 행복하게 자라야 할 아이들을 언제까지 탈북 대열로 내몰 것인가. 어떻게 하면 탈북 과정에서 팔려가고 성폭행을 당하는 여성과 소녀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

지난주 서울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한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2+2회의)를 마친 뒤 대북(對北) 금융제재를 예고하면서 “북한 지도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의 추가 제재에 대해 “북한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교체)로 가려는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레짐 체인지는 외세의 개입이나 혁명, 쿠데타 등의 내부적 요인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것을 말한다. 무력 개입에는 찬성할 수 없지만 북한 정권이 내부 요인에 의해 변하도록 유도하는 레짐 체인지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2400만 북한 동포의 지옥 같은 나날을 생각하면 혈육인 남한이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반(反)인륜이다.



북한은 천안함 도발 이후 가면을 벗어던졌다. 보복 성전(聖戰)에 핵 실험 위협까지 한다. 보복은 피해를 당한 쪽에서 하는 것이다. 천안함을 공격한 쪽이 보복을 하겠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라고 부르고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갈아 치우라고 막말을 해댄다. 이것이 북한의 맨얼굴이다.

우리는 천안함과 소중한 46명의 생명을 잃었지만 대북정책의 목표를 새로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레짐 체인지로 김정일이 퇴장한 뒤에도 살아남을 북한 동포를 구하는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