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다단한 한국 정치현실에서 뉴라이트의 역할에 대한 해석이 구구하다. 경제철학에서는 우리의 뉴라이트도 영국과 미국의 뉴라이트와 맥을 같이하는 선명한 메시지를 갖고 있었다. 작은 정부, 감세, 규제완화를 통해 시장의 성장잠재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은 꽤 두터운 지지를 받았고 이명박 정부 출범의 주춧돌이 됐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뉴라이트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어찌 보면 때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세계 금융위기라는 큰 산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산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세계 지식인의 화두는 정부실패에서 시장실패로, 규제완화에서 금융 규제강화로 이동했다.
광고 로드중
그런가 하면 큰 정부가 시장의 구멍을 메워주는 케인지언(Keynesian)의 시대가 재림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바람이 바뀌어 폭증하는 정부 부채가 시장의 최고 위협요인으로 인식되는 상황이 돼버렸다. 아찔한 혼란의 와중에 경제정책이 방향성을 잃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처음부터 정체성 혼란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실현 불가능한 성장률을 약속하고 고환율, 저금리, 건설경기 부양에 집착하던 모습은 기초체력 단련을 통해 장기 성장을 도모하는 신중한 고전학파가 아니라 경기부양의 효과가 수십 년 지속될 것을 믿는 철없는 케인지언의 모습이었다. 4대강의 역사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테네시 계곡을 빼닮았고, 현 정부에는 공공사업을 급조하고 정부사업을 확대해 경기를 띄우는 비대한 정부의 역할이 제격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미래산업을 위해 장기적 안목으로 열심히 뛰는 사람들이 있다. 앞서가는 기업들은 스마트월드니 바이오니 대체에너지니 하는 신산업에 명운을 걸고 있고 정부 안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위원회와 기획단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4대강 바닥에서 퍼 올린 토사에 묻혀 잘 보이지도 않는다.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이 사업이 정부의 브랜드 이미지가 될 정도로 그렇게 급박한 사업인지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사람이 많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유화된 대기업과 은행들을 매각하고 민영화해 산업과 금융의 새 판을 짜는 일은 이 정부에 맡겨진 중대한 사명이다. 그런데 실적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민영화됐던 은행이 사실상 국책은행으로 돌변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KB금융의 회장이 ‘신비한 힘’에 의해 바뀌는가 싶더니 총리실에선 국민은행이 국책은행인 줄 알았다는 진술까지 나온다. 이러다간 국민은행이 참여하는 워크아웃이 세계무역기구(WTO) 정부보조금 소송에 제소돼 심판관이 국민은행을 국책은행으로 간주하는 일이 생길까 두렵다.
광고 로드중
정책과 사업 너무 복고풍이다
그런데 희망의 비전을 기다리고 있는 국민에게 정부가 부르는 노래가 너무 복고풍이다. 소통이 문제라고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선곡(選曲)이 잘못되면 노래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관중과 소통할 수 없다. 동년배 친구들은 아닐지 몰라도 청중의 대부분은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정권 재창출의 정도(正道)는 많은 국민이 공감하는 사업을 시작하고 사업이 계속돼야 함을 설득하는 것이다. 마침 정부가 정권 후기를 준비하는 개각을 한다고 한다. 2막에 새로 등장한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는 젊은 세대가 함께할 수 있는 신나는 곡조였으면 좋겠다.
송의영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교수·경제학 eysong@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