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 번역史주요 세 인물 다룬 연구서 나와
서재필, 최남선, 김억을 번역사(史)의 시각에서 조명한 학술서가 나왔다. 김욱동 한국외국어대 통번역과 교수는 ‘근대의 세 번역가’에서 서재필을 “직접 번역한 번역가는 아니지만 근대 계몽기에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방법론을 제시한 한국 최초의 번역 이론가였다”라고 평가했다.
서재필은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성서 번역을 위해 자신에게 한국어를 배우던 미국 성서공회 총무 헨리 루미스의 활동을 보면서 번역에 눈을 떴다. 귀국 후 ‘독립신문’을 창간한 그는 논설에서 외국 학문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외국 서적을 번역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서재필이 주장한 번역은 직역이 아닌 의역이었다. ‘조선에 대한 외국인의 오해’라는 글에서 그는 “영어를 조선어로 바로 번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자역(字譯)보다는 의역을 하는 게 좋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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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사랑의 승전’ ‘조손(祖孫) 삼대’ 등 톨스토이의 작품을 잇달아 번역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작중 인물의 이름을 ‘순녀’나 ‘복녀’처럼 한국식 이름으로 바꿨다는 사실이다. 김 교수는 “인물 장소 풍속 등을 자국 언어에 맞게 개작하는 것을 번역학에선 ‘번안’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는 판소리 사설을 연상케 하는 문체로 번역했다. 원문의 ‘사월’을 계절에 맞게 ‘춘삼월 망간(음력 삼월 보름경)’으로 옮기기도 했다.
최남선은 서양 언어에 능통하지 못해 대부분 일본어 저본을 한국어로 중역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최남선 스스로도 ‘레미제라블’ 번역서에 “나는 불행히 원문을 …을 행복은 가지지 못하얏스나 일즉부터 그 역본을 …어 다대(多大)한 감흥을 엇은 자로니”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중역의 형태를 빌려서나마 서양의 문학 작품을 번역해 소개함으로써 문화 운동을 펼친 것은 최남선이 처음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김억은 번역을 단단한 발판에 올려놨다. 최남선이 신문화 운동에 주력했다면 김억은 문학 쪽으로 범위를 좁힌 게 특징이다. 특히 김억은 서양 원문을 직접 번역함으로써 한국 번역사에 이정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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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김억의 공헌은 직역의 전통을 수립한 것이다. 한국 번역사에서 이런 시도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처럼 가위 혁명적인 변화였고 빗대 말하자면 김억에 이르러 비로소 번역은 일본 식민주의의 굴레에서 해방을 맞았다”고 평가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