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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대만 야시장 간식기행] 참을 수 없는 ‘맛의 유혹’

입력 | 2010-07-09 03:00:00


 


 

대만의 여름 날씨는 ‘여름은 더워야 제 맛’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견디기 힘든 아열대 더위로 정신을 쏙 빼놓는다. 바다가 육지를 향해 밀어 보내는 습기를 잔뜩 머금은 해풍은 금세 셔츠를 땀범벅으로 만든다. 아침부터 태양이 작열해 한낮 기온이 섭씨 34, 35도까지 치솟으면 상점 앞 흑구(黑狗)도 앞발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낮잠을 청한다. 타이베이(臺北)나 가오슝(高雄) 같은 대도시의 빌딩 1층 입주 상가들이 하나같이 그늘이 드리워진 복도 안쪽으로 물러나 있는 것도 보행자들이 햇볕을 피해 거닐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어둠과 함께 도시는 활기를 되찾는다. 달궈진 대지 위 습한 공기가 한바탕 열대성 소나기를 쏟아내린 덕분에 한풀 꺾인 더위는 이방인에게 에어컨의 보호막을 벗어나 거리로 나설 용기를 준다. 하지만 오후 11시가 넘어도 바깥 기온은 섭씨 28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에서라면 더위 때문에 잠 못들고 뒤척이는 열대야지만 낯선 남국(南國)에서 맞는 밤은 발걸음을 쉽게 호텔로 향하지 못하게 만든다.

○ 잠 못드는 열대의 밤

 

대만의 대도시에서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는 야시장(夜市)은 이방인은 물론이고 대만 시민에게도 훌륭한 피서 코스다. 야시장은 온 가족이 노점상이 노천에 내다놓은 간이식탁에 둘러앉아 늦은 저녁을 해결하는 곳인 동시에 주머니가 가벼운 연인들의 부담 없는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다. 서울의 남대문시장을 확대해 옮겨 놓은 듯한 대만의 야시장을 경험하고 나면 무더위 때문에 축 처진 몸과 마음이 금세 활기차게 바뀐다. 한국인 유학생이 대만에 오면 가장 먼저 순례하는 코스로 꼽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타이베이 시 북부 톈무(天母) 지역에 위치한 스린(士林) 야시장은 그중에서도 제일로 꼽히는 야시장이다. 타이베이 시 전철(MRT) 젠탄(劍潭) 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스린 야시장은 밤이 깊어갈수록 늘어가는 구경꾼들과 함께 술렁인다. 타이베이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스린은 의류와 화장품, 액세서리 등 각종 잡화를 취급하는 상점과 끝없이 늘어선 포장마차에서 판매하는 이국적인 간식거리로 지나가던 여행객의 발길을 잡는다. 해외에서 배탈 등으로 고생하길 원치 않는다면 제일 먼저 피해야 할 것이 거리에서 조리한 음식이란 점은 잘 알고 있지만 여기저기서 호객꾼이 질러대는 함성이 뒤엉킨 스린 야시장의 들뜬 분위기는 이방인에게도 ‘스트리트 푸드’에 도전할 용기를 준다. 전철역에서 야시장까지 걸어오느라 땀을 많이 흘렸다면 본격적인 야시장 어슬렁대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시원한 마실거리로 목부터 축이는 것이 좋다.

○ 남국의 맛에 풍덩

현지 가이드의 추천을 받아 처음 도전한 음류는 ‘쿠과즈(苦瓜汁·2000원 상당)’. 멜론 모양의 쿠과라는 과일로 만든 주스다. 녹즙 같은 푸른 빛깔의 이 주스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낯선 풋내와 씁쓰름한 뒷맛에만 적응할 수 있다면 갈증 해소에 그만이다. 적(赤), 흑(黑), 녹(綠) 등 다양한 색깔의 콩을 갈아 만든 두유는 무난한 선택이다.

달달한 맛을 좋아한다면 ‘전주나이차(珍珠내茶·2000원 상당)’를 택해도 좋다. 오렌지 맛 주스와 밀크티를 기본으로 삼아서 버블티에 들어가는 쫀득한 타피오카 젤리 알갱이가 들어 있다. 대만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음료란다. 굳이 흠을 잡자면 너무 달기 때문에 주문에 앞서 설탕시럽을 적게 넣어 달라는 부탁이 필수라는 것. 자칫하면 설탕물이나 다름없는 음료를 받아들고 난감해하는 수가 있다. 밀크 커피를 주문할 때 역시 마찬가지다.

스린 야시장을 거닐다 보면 개구리 그림이 그려진 노점 간판을 자주 지나치게 된다. 개구리 그림 아래는 친절하게 ‘개구리알(Frog Egg)’이라는 영문 설명이 적혀 있어서 ‘대만인들이 못 먹는 게 없다더니 개구리 알까지도 먹는구나’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 점포는 개구리알이 아니라 타피오카 젤리가 들어간 음료나 간식을 파는 곳이니 안심해도 좋다. 이 타피오카 젤리의 모양이 흡사 개구리알처럼 생겨 이런 재미있는 간판이 들어서게 됐다. 이제 겨우 스린 야시장의 한 블록을 수박 겉핥듯 지나쳤을 뿐인데 어느새 시장함이 느껴진다. 목도 축였겠다, 이젠 본격적으로 배를 채울 차례다.

글·사진 타이베이·가오슝=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디자인=김원중 기자 paranwon@donga.com

 


■ 닭튀김… 소시지… 굴전… 입안이 행복

간식의 천국인 대만 야시장에는 낯선 외국 음식을 즐기는 모험가는 물론이고 해외에 갈 때는 고추장과 김치를 빼놓지 않는 입 짧은 이들마저 만족시켜 줄 풍성한 먹을거리들로 가득하다.

대만 야시장에는 열대야의 찌는 듯한 무더위도 잊게 만드는 활기가 넘친다. 사진은 타이베이 스린 야시장 상인이 철판 위에 대만식 굴전을 부치고 있는 모습.

스린 야시장의 1등 간식은 역시 닭튀김이다. 손님 앞에서 방금 튀겨 낸 닭튀김에 후추양념을 뿌려 포장해 주는데 그 크기가 A4용지만 하다. 모양만 봐선 닭튀김보다 돈가스에 가까울 정도다. 이 닭튀김(1600원 상당)을 먹겠다고 줄을 선 이들이 평일 저녁인데도 얼추 20명이 넘는다. 이쯤 되다 보니 포장과 계산만 전담하는 직원이 있을 정도다. 10여 분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내 차례가 다가오자 점원이 비닐봉지를 내민다. 곁눈질로 본 대로 다른 손님처럼 비닐봉지 입구를 벌리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점원이 종이봉투에 싼 뜨거운 튀김을 비닐 속에 쑥 집어넣어 준다. 맛은 어떨까? 한입 베어 물 때의 ‘바삭’하는 식감과 후추양념의 매콤한 맛이 어우러져 일품이다.

○ 쌀소시지 돼지고기를 품에 안다

스린 야시장에는 라이스버거와 핫도그의 사촌쯤 될 법한 신기한 간식도 있다. 이름부터가 ‘작은 소시지를 품은 큰 소시지(大腸包小腸)’로 범상치 않다. 이 간식의 핵심은 하얀색 큰 소시지인데 주재료가 쌀이라는 사실이 특이하다. 돼지 곱창에 쌀밥을 이겨 넣어 하얀 소시지 모양을 만들었다. 철판에 알맞게 데운 쌀 소시지에 세로로 길게 칼집을 내 벌려 준 다음 후추맛이 칼칼한 돼지고기로 만든 진짜 소시지를 그 안에 끼워 넣어서 양념을 뿌려 건네주는데 한 입 베어 물면 그 맛이 별미다. 쌀 소시지가 돼지 소시지의 느끼한 맛을 잡아줘서 뜨거울 때 먹으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줄어드는 쌀 소비 때문에 고민하는 우리나라에서도 한번쯤 개발해 봄직한 메뉴가 아닐까 싶다.

타이베이나 가오슝의 야시장 먹자골목을 누비다 보면 대만 총통 마잉주(馬英九)의 친필 사인이 적힌 간판을 단 노점과 만나게 된다. 사인 밑에 적혀 있는 1998년이란 연도로 짐작건대 마 총통이 타이베이 시장 재직 시절 야시장을 방문했다가 상인의 청을 받아 남긴 사인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로 치면 대통령이 다녀간 집이나 다름없으니 노점 주인이 10년 넘게 간판을 바꾸지 않고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하지만 이 사인을 맛의 보증수표로 여기는 것은 금물이다. 야시장을 조금만 더 거닐다 보면 마 총통의 사인이 적힌 간판을 여럿 발견하기 때문이다.

○ 애주가 입맛 돋울 안주도 풍성

 

애주가라면 대만 야시장에서 입맛에 딱 맞는 술안주를 발견하고 입이 귀에 걸릴 공산이 크다. 특히 우리나라의 해물 파전과 꼭 닮은 대만식 굴전은 짭짜름한 맛에 금세 ‘한 잔’ 생각이 나게 한다. 뜨겁게 달궈진 철판 위에 밀가루와 계란으로 만든 반죽을 올리고 다시 그 위에 싱싱한 굴과 오징어, 야채를 올린 뒤 생활의 달인 경지에 이른 능숙한 솜씨로 요리사가 뒤집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굴전의 매력을 이미 아는지 파란 눈의 서양인은 어느새 굴전을 시켜 놓고 차가운 맥주를 들이켜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옆자리 친구와 이야기꽃을 피웠다.

맥주보다 소주파라면 우리나라의 뼈 없는 닭발을 빼다 박은 듯한 대만식 닭발 앞에서 걸음을 멈출지도 모르겠다. 대만식 뼈 없는 닭발은 현지에서 간식으로 더 사랑을 받지만 짭짜름한 맛과 매콤한 뒷맛이 간식보다는 소주 안주로 그만이지 싶다. 간장에 졸인 오리혀 요리는 끝내 시도하지 못한 음식이지만 현지인들이 한국에서 번데기 먹듯 종이봉투에 넣은 채로 들고 다니며 연신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겉보기만큼 혐오스럽지는 않다.

○ 지방색 따라 먹을거리도 다양

타이베이 시에서 고속철도로 서부 해변을 따라 남쪽 방향으로 2시간쯤 달리면 도달하는 항구도시 가오슝에 있는 류허(六合) 야시장은 인근 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해산물로 만든 간식을 파는 포장마차들로 유명하다. 특히 해산물 꼬치구이가 일품인데 이곳에선 하늘의 비행기, 바닷속 잠수함을 제외하면 모든 재료를 꼬치에 꿸 수 있다고 한다. 아이 팔뚝만 한 문어와 오징어 같은 해산물과 어묵, 소시지, 버섯 등 다양한 꼬치 요리가 여행자들의 간택을 기다린다. 소금물에 절인 뒤 말려서 만든다는 갈색빛이 도는 숭어알은 우리의 명란젓이나 창란젓을 떠올리게 한다. 냉장고에 뒀다 마시면 꿀물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달콤한 사탕수수 주스와 ‘토우화(豆花)’라고 불리는 대만식 팥빙수는 열대야 속에서 청량감을 맛보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대만 야시장은 귀국길에 지인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에도 그만이다. ‘펑리(鳳梨)’라고 불리는 파인애플 과육이 씹히는 잼이 들어있는 중국식 패스트리와 크루아상처럼 켜켜이 쌓은 얇은 빵 반죽 속에 달콤한 시럽이 든 ‘타이양빙(太陽餠)’은 대만을 찾은 관광객들이 반드시 챙기는 인기 품목이다. 후추로 양념한 소를 넣고 화덕에서 구운 후추빵도 ‘칼칼한 빵’이라는 낯설기에 더 신기한 맛을 체험할 수 있는 간식거리다.
■ 온천욕, 대만여행의 또다른 즐거움

《환태평양조산대에 위치한 대만은 전국적으로 온천이 많이 분포돼 있다. 특히 유황 성분이 함유된 온천수가 나오는 타이베이 베이터우 일대에는 일본 료칸 스타일의 온천장이 많아 여행객들이 여독을 풀기에 그만이다.》

여독도 풀고 더위도 쫓기에는 온천욕만한 것이 없지만 ‘료칸(旅館)’으로 유명한 일본과 달리 대만에서 온천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불의 고리’라고 불리는 환태평양조산대에 위치한 대만은 전국적으로 128개에 달하는 온천이 있고 특히 수도 타이베이 인근에는 온천수가 나오는 곳이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북쪽에 위치한 양밍(陽明) 산 인근의 베이터우(北投) 온천은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온천지대다. 입구에 있는 온천박물관을 중심으로 오르막길을 따라 뻗은 길 양쪽으로 온천장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양밍 산 중턱 노천에는 지하에서 올라온 온천수가 하얀 김과 함께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이곳 베이투의 온천수는 유황성분이 포함된 것으로 유명하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대만은 목욕문화에서도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베이터우의 온천장 중에 일본의 료칸 스타일이 적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 일본 관광객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예 ‘교토(京都)’ 같은 일본 지명을 상호로 내건 곳도 있을 정도다. 잠시 짬을 내 ‘수도(水都)’란 이름의 온천장을 찾았다. 노천탕에 몸을 담글 수 있다는 말에 320NTD(1만2800원 상당)를 내고 온천장 건물 옥상에 마련된 탕에 입장했다.

탕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당혹스러운 부분은 눈을 둘 곳이 없다는 것. 일본 목욕문화의 영향으로 남녀혼탕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탈의실만 따로 쓸 뿐 남녀가 탕을 함께 쓴다. 물론 남녀 모두 수영복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미리 수영복을 준비하지 않으면 입장료에 버금가는 금액(300NTD)을 지불하고 따로 구입해야 한다. 입장할 때 들고 간 카메라로 탕의 이 구석 저 구석을 담고 싶지만 건너편 탕에 앉은 여성 입장객의 따가운 눈총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온천수가 한국에서처럼 뜨겁지 않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지하에서 끌어올린 온천수를 다시 한 번 가열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이곳에선 따로 가열을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온천수를 쓰기 때문으로 보인다. 때마침 ‘후두둑’하고 소낙비가 내리면서 탕 밖의 머리는 시원하고 탕 속의 몸은 따뜻해지면서 반신욕 효과까지 더해져 어느새 여독이 스르르 풀린다. 온천수에 함유된 유황성분 때문에 물 속에서 약간의 달걀 썩는 냄새가 맡아지지만 그리 역한 편은 아니다. 온천욕을 마치고 나면 온천장 앞에서 철제 바구니에 달걀을 넣어 뜨거운 온천수에 익혀 먹는 체험도 베이터우 온천에서 얻어가는 또 하나의 재미다.

타이베이·가오슝=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