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밝힌 의전원 도입의 목표는 다섯 가지였다. 폭넓은 교양과 도덕성을 갖춘 인술의 양성, 선진화된 의학교육 훈련 시스템의 도입, 학사학위 소지자에게 개방함으로써 다양화 추구, 대학원 단계에서 직업 결정을 통한 기초학문 보호 육성, 대학 입학 단계에 집중된 입시 과열 완화이다. 장기적인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지금까지의 평가로는 의전원은 다섯 가지 정책목표 달성에 모두 실패했다.
자세히 살펴보자. 앞의 세 가지는 의학교육에 관한 내용이고 다음 두 가지는 사회문제에 관한 내용이다. 의학교육 분야의 정책목표는 의전원으로의 전환을 강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최소한 의전원 체제가 의대 체제보다 세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에 적합하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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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두 가지 또한 마찬가지다. 의대를 의전원으로 만들면 우수한 인재가 이공계로 진학할 수밖에 없으므로 기초학문이 보호 육성된다고 예상했으나 오히려 이공계 대학교육이 학원화되었고 결국 황폐화되었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이공계에 우수 인재가 가지 않는 이유가 모두 의사가 되려 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공계에 비전이 없어서 모두 의사가 되려 한다는 점을 증명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입시 과열의 완화이다. 더 말할 것도 없다. 이공계 황폐화 문제와 같은 맥락이다.
결국 의전원이 목표했던 다섯까지 정책목표는 모두 달성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잘못 설정됐었다. 여기에는 여러 관련 주체의 책임이 있다. 미국식 제도의 외형만 보고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도입을 주장했던 학자, 고등학교 이과 1등 졸업생을 의대에 못 가게 하면 해결된다고 주장했던 사려 깊지 못한 정치인, 고등교육법 체계에 맞지 않는 전문대학원을 준비 없이 도입하는 데 앞장선 행정 관료, 적절한 대안이 아닌 줄 알면서도 정부의 재정 지원에 현혹된 몇몇 의대 그 모두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정책목표가 잘못됐다고 해서 학사졸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전원 제도 자체를 폄훼할 수는 없다. 아직은 실험 중이다.
무리한 정책 추진을 멈추고 다양한 학제를 운용해 보기로 한 점은 다행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교과부의 용단은 책임추궁에 앞서 칭찬받을 만하다. 그러나 의대-의전원을 합한 입학정원의 변동이 없고 충분한 경과기간을 둔다고 해도 교과부나 의대나 의전원이나 국민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권용진 서울대 의대 의료정책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