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의 한 기초자치단체장에 당선된 A 씨는 선거를 잠시 도와준 B 씨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무실에 나와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다고 한다. 사업과 관련해 뭔가 바라는 눈치이고, 주변에 자신이 한자리할 것이라고 행세하면서 벌써 인사청탁 등 온갖 잡음이 들리기 때문이다. A 씨는 “임기 동안 큰 부담이 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윤종오 울산 북구청장 당선자(민주노동당)는 최근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공무원들의 인사 불이익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민노당 구청장이던 2004년 전공노 파업으로 징계를 받은 공무원 45명 가운데 상당수를 승진까지 시켰다가 후임인 강석구 현 구청장(한나라당)이 승진을 취소한 것을 윤 당선자가 다시 원상회복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지자체에선 인수위 관계자들이 행정기밀에 속하는 도시계획을 내놓으라고 공무원들을 윽박지르는 통에 공무원들이 죽을 맛이라고 한다.
강남 등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65%도 껴안겠다고 ‘센스 있는’ 약속을 했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도 정작 태스크포스(TF)팀은 전교조 일색으로 채워 교총이 불참을 선언했다. 한 교육공무원은 “TF를 보면 어떤 교육정책이 나올지 뻔하다”며 “전교조 인사들이 벌써 목에 힘을 주고 내려다본다”고 말했다. 캠프 참모들끼리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벌써 내분이 벌어진 곳도 있다. 참여정부 때 전교조 간부들이 교육인적자원부 사무실을 무시로 들락거리고 공무원들이 이들의 눈치를 보던 모습이 떠오른다.
윤흥길의 소설 ‘완장’은 권력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투기로 졸부가 된 최 사장의 눈에 들어 마을 저수지 양어장 감시원 자리를 얻은 건달 임종술은 완장을 찬 뒤 마을사람들에게 안하무인으로 군림을 한다. 알량한 권력에 맛이 들어 초등학교 동창 부자까지 폭행한다. 어느 날 저수지로 나들이 온 최 사장의 일행에게 행패를 부리다 해고되지만 완장일은 놓지 못한다. 저수지 물 문제로 수리조합 직원과 경찰에게 행패를 부리다 급기야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면서 임종술은 완장의 허망함을 깨닫게 된다.
‘완장의 폐해’는 어느 시대, 어느 정권에나 있었다. 문제는 완장들은 한때 거들먹거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문고리 권력’을 빌려 필시 한몫 챙기려 할 것이기 때문에 부정부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남도교육청 간부들이 새로 당선된 진보 교육감에게 왜 당선축하금 봉투를 내밀었겠는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무소속이든, 보수 또는 진보 교육감이든 이런 완장들을 멀리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이고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준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