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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김희준]우리가 알아야 할 ‘우주 도미노’

입력 | 2010-06-17 03:00:00


오늘날 과학은 5000년의 인류문명, 500년의 근대과학, 그리고 최근 50년의 통합을 거쳐 이제 바야흐로 우주 전체의 모습을 조감하고 우주 진화의 줄거리를 파악하게 됐다. 우주의 기원부터 생명의 원리까지 자연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게 된, 기적과도 같은 시기에 사는 우리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과학의 진면목을 제대로 전달할 책임이 있다.

내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은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인류가 자연을 파악하고 문명을 일으킨 바의 핵심을 과학 과목에서 배운다. 전반부에서는 ‘우주와 생명’이라는 대주제 아래 빅뱅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주 진화의 열쇠가 되는 사건을 관련 원리와 함께 배운다. 종전에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으로 나눠 가르치던 내용이 큰 틀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기르고 과학적 사고방식을 익히게 한다. 후반부에서는 과학과 인류문명의 긴밀한 관계를 이해하여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민주시민으로서의 과학적 소양을 기르게 된다.

어떻게 하면 어려운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고 배울 수 있을까? 비결은 한마디로 중요한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비교적 덜 중요한 내용은 간략히 다뤄야 한다. 그렇게 해서 번 시간을 투자해서 정말 중요한 내용을 확실히 이해하도록 하자는 말이다. 이해를 못하면 어렵고 이해를 하면 쉽게 느낀다. 게다가 이해하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면 재미까지 느끼게 된다.

아쉽게도 과거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과학을 어렵고 재미없게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을 단편적 지식의 조합으로 배우기 때문에 배우는 내용의 중요성과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지못해 암기식으로 배우고 나면 얼마 안 돼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사람들 대부분이 평생 과학은 어렵고 재미없다는 인상을 지니고 산다.

우주의 진화는 하나의 거대한 도미노라고 볼 수 있다. 우주적 도미노에서 첫 번째 도미노가 쓰러지는 순간은 우주의 기원인 빅뱅에 해당한다. 빅뱅은 빛과 물질, 쿼크와 렙톤으로 이어지고, 쿼크와 렙톤은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이어진다. 그리고 노자가 삼생만물(三生萬物)이라고 말한 대로 양성자 중성자 전자의 세 가지 입자의 조합으로 우리 주위의 삼라만상이 도미노처럼 펼쳐진다.

앞부분 도미노가 다음 도미노를 쓰러뜨려 주어야 다음, 다음으로 연결되어 막판에 멋진 결과가 얻어진다. 그렇다면 당연히 초기 우주에서 일어난 사건으로부터는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찾아볼 수 있고, 뒤로 갈수록 기본 원리로부터 파생되는 구체적 결과물이 나타난다. 우리 은하도, 태양계 전체도, 그리고 생명의 행성인 지구도, 우리 자신도 우주적 도미노의 결과물이다.

과학은 하나의 도미노가 다음 도미노로 이어지는 과정과 거기에 들어있는 원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빅뱅의 첫 도미노가 다음 도미노로 이어지는 초기 우주의 과정도 중요하고 최초로 원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최초로 별과 은하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최초로 생명체가 태어나는 과정 하나하나가 다 흥미롭고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우주의 역사에서는 처음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후에 일어날 사건의 향방을 결정한다. 초기 우주에서 우주가 팽창하고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기본입자가 뭉치는 과정을 잘 이해하면 뒤의 일은 비교적 쉽게 풀려 나갈 것이다. 물론 초기 우주로 돌아가는 일은 물질의 가장 깊은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므로 서툴고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거기에 가장 심오하고 흥미로운 자연의 원리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김희준 서울대 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