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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노지현]뭘 걸러낼지 의심스러운 어린이 유해식품 표시제

입력 | 2010-06-16 03:00:00


‘많이 먹으면 살찐다. 먹고 꼭 운동해라, 초코렛.’ ‘그냥 먹고 자면 이빨 썩는다. 초코렛.’

요즘 버스정류소 앞에 서면 어린 시절 부모님의 잔소리를 그대로 적어 놓은 듯한 초콜릿 광고판이 눈길을 끈다. 요즘 흔히 나오는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늘씬한 미녀가 초콜릿을 크게 한 입 베어 무는 장면도 없다. ‘불편한 진실’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은근하게 다가온다.

광고전문가 이제석 씨가 만든 ‘아름다운 가게’ 초콜릿 제품의 티저광고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만들겠다는 뜻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대다수 상품은 필연적으로 자신을 감출 수밖에 없다. 많이 먹으면 살찐다거나, 그냥 먹고 자면 이가 썩는다거나 하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없다. 그래야 하나라도 더 팔린다.

판단능력을 갖춘 어른이라면, 소비는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르다.

보건복지부가 ‘신호등표시제’를 내년에 도입하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어린이 기호식품에 들어있는 지방, 포화지방, 당, 나트륨 등의 함량을 높고 낮음에 따라 적, 황, 녹색으로 표시하도록 식품제조업자 및 수입업자에게 권하는 제도다. 어린이가 영양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15일 서울 한국야쿠르트 대강당에서 공청회도 열렸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복지부 안은 실망스럽다. 업계가 자발적으로 시행하는 자율시행제인 데다 적용되는 제품 역시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캔디, 빙과류, 빵류, 초콜릿, 아이스크림, 어육소시지, 면류, 탄산음료 등 대다수 가공식품과 조리식품을 대상 품목에서 제외했다. 예컨대 아이스크림의 경우 특정 성분으로만 이뤄져 있기 때문에 거의 예외 없이 ‘빨간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유다.

또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햄버거는 대상 품목에 포함되지만, 맥도날드처럼 프랜차이즈 햄버거는 제외된다. 기준이 들쭉날쭉한 것이다. 복지부는 “앞으로 적용 대상을 차츰 늘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식품업계는 지금도 신호등을 피해 가기 위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공세는 강화될 것이다.

덴마크는 올해 청량음료에 부과하는 ‘소다세’를 도입한 데 이어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같은 단 식품들에 대한 과세도 추진 중이다.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해 루마니아처럼 ‘패스트푸드세’ 도입을 고려하는 곳도 있다.

1997년 5.8%였던 소아비만 환자들이 10년 만에 11%로 늘었다. 먹을거리에 들어 있는 성분을 밝히지 않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산업이라면 문제가 있다. 정부가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경제논리에 빗대어 재고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노지현 교육복지부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