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물에는 문제가 없지만 외관상으로는 분명히 상품성을 잃은 이 와인들을 어느 와인 소매 회사가 매입하겠다고 나섰을 때 많은 수입사들은 의아해했다. 외관이 불량한 와인을 처분한 것에 더해 물류 창고의 공간을 확보하게 됐다며 고마워하는 수입사까지 있었다. 소매 회사는 이렇게 저렴하게 구입한 와인에 아주 적은 이익을 붙여 시장에 내놨고 이 소식을 접한 와인 애호가들은 매장으로 몰려들었다. 이후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 라벨 불량 와인이 가장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거듭났음은 물론이다. 라벨 불량 와인은 씨가 말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와인 애호가들이 ‘만세’를 부를 만한 와인이 또 있다. 와인 중에 불투명한 하얀 부유물 또는 작은 유리알처럼 보이는 물질이 보이는 화이트 와인이 그것이다. 전자는 미처 걸러지지 않은 효모 찌꺼기일 가능성이, 후자는 숙성 과정에서 포도의 주석산이 칼륨, 칼슘과 반응해 결정화된 물질일 가능성이 높다. 주석(酒石) 또는 주석산염으로 불리는 이 성분은 품질이 좋은 해의 와인이 산(酸)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해서 ‘와인의 다이아몬드’라는 근사한 별명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다.
광고 로드중
레드 와인 중에도 침전물이 발견되는 와인이 있다. 와인병 펀트(와인병 바닥에서 안쪽으로 볼록 올라간 부분)의 주된 기능, 보르도와 부르고뉴 와인병 모양이 다른 이유, 디캔팅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공통적으로 침전물을 거르는 데 있다. 다만 레드 와인 속 침전물은 와인의 색깔 때문에 병을 열기 전까지는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 침전물은 와인의 맛과 향을 복합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양조업자에 따라서는 거르는 과정을 생략하기도 한다.
와인을 즐기는 인구가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화이트 와인 속에 불순물이 있다면서 반품하는 사례는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다. 이 덕분에 쾌재를 부르는 사람들은 와인 애호가들이다. 저렴한 가격에 와인을 구입해 보겠다며 경쟁률 높은 라벨 불량 와인에 목매지 말고 올여름에는 와인숍에 ‘침전물 보이는 화이트 와인’이 있는지 문의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혜주 와인칼럼니스트
리슬링 아우슬레제 벨레너 조네누어
요한 요제프 프륌
광고 로드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