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일에 대한 생각을 살짝 미뤄둔 채 한참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편안한 요람인 지구를 만끽했다. 드러누워 있던 우리를 바닥으로 끌어당겨 주던 중력이 편안했고 오랜만에 맡는 흙냄새, 눈이 조금 부시긴 했지만 내리쬐는 햇볕도 너무 반가웠다. 그때만큼은 우리 셋 모두 그 편안함을 깨고 싶지 않았다. 힘든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시간을 만끽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은 하필 우리가 탄도궤도로 귀환을 하게 되어 힘이 들었던 것이 운이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행운이었다. 비행을 하기 전 훈련 시에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훈련을 한다. 발사 및 귀환 시에 일어날 모든 사항에 대해 배우고 훈련을 하므로 만일의 경우 탄도궤도를 통해 어렵게 귀환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배우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훈련을 받았다.
탄도궤도 귀환 ‘위험한 행운’
귀환하는 동안 캡슐 내부에서 연기가 나서 잠시 동안 전력을 모두 꺼야 하는 상황까지 있었고 그동안에는 구출을 위한 신호조차 보낼 수 없었다. 임무 조종 센터에서는 우리를 찾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그 과정 동안 우리의 비행을 책임지는 선장은 너무나 침착하게 모든 일을 처리했다. 심지어 자신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경력을 가진 나의 생각을 존중하고 중요한 결정을 앞둔 상황에서 공학도인 나의 의견을 완전히 수용했다.
그래서인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이지 탄도궤도를 통한 귀환은 나에게는 너무나 큰 행운이자 기회였다. 수십 년 훈련을 받으며 장기 체류 비행을 몇 번씩 해본 우주인도 이런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전투기 조종사의 이젝션 클럽(ejection club)처럼 탄도궤도 귀환 클럽(Ballistic landing club)이 있다며 클럽에 가입하게 됐음을 축하한다고 가슴 가득 훈장을 달았던 러시아 할아버지 우주인이 악수를 청했을 때는 영광스럽기까지 했다.
개인인 나의 삶에도, 내가 속한 여러 사회에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에도 확률은 낮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항상 일어날 수 있고, 실제로 일어난다. 비록 당시에는 죽을 만큼 힘든 일이더라도 우리는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더욱 어려운 일이 일어나도 이겨낼 힘을 기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지나고 나면 행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큰 병을 이기기 위해 백신을 맞고 가벼운 몸살을 겪듯이 우리가 더욱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어려운 일이 꼭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몸살앓는 한국 더 건강해지길
반만년 역사 속 우리는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냈다. 그때마다 죽을 듯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모든 과정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행운의 백신이었던 것 같다. 요즈음 뉴스를 접할 때면 대한민국은 참 수많은 어려운 일로 가득 찬 듯한 느낌이다. 이 모든 일이 더욱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비록 눈을 찔끔 감게 하는 간단한 주사가 아니라 하루 정도 몸살을 앓아야 하는 것일지라도 이겨내고 나면 큰 병을 이겨내게 만드는 백신이기를, 그래서 다음 날 눈을 떴을 때는 더욱 건강한 대한민국으로 다시 일어나길 기대한다.
이소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