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차례 모임에서 천안함 사태에 대한 국민정서의 일단을 살필 기회가 있었다. 첫째는 필자가 지도하는 학부 학생들과의 저녁자리였다. 20대 초반, 과거 누구보다 치열하게 국가와 사회, 이상과 현실을 고민하던 집단이다. 하지만 요즈음 이네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학교생활, 시험, 취업준비에 관한 대화 말미에 천안함 사태가 어떻게 진전될 것인가란 질문을 던져보았다. 잠시 심각해지나 싶더니 한 학생이 대답했다. “아무 생각 없어요∼.”
며칠 후, 최근 수행 중인 연구와 관련해 업계 현장의 실무자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주 참석자들은 30대 중후반, 현실에 대한 자신감과 에너지가 충만한 나이다. 이런저런 사회현안을 거쳐 천안함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누군가 “아, 지겨워” 했다. 침몰 원인을 둘러싸고 좌초설 대 미군 오폭설을 지지하는 두 패가 설전을 벌였다. 화제가 주가 동향으로 넘어가서야 필자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안함 관련 거대한 인지부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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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변의 제한된 사례이지만 천안함 사태를 둘러싼 우리 사회 저변의 분위기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란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정부에 대한 극한의 불신, 이기주의 내지 ‘아무 생각 없음’이 도를 넘었다는 판단이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이 같은 심리상태의 원인은 무엇일까. 사회심리학의 고전적인 인지부조화 이론이 하나의 설명을 제시한다.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천안함 사태와 그 주범으로 북한이 지목되는 정황은 평화로운 삶을 원하는 우리 국민의 심리에 거대한 부조화를 발생시켰다. 북을 끌어안으려는 측에서 부조화를 해소하는 지배적 방식은 천안함 사태와 북의 관련성을 억지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부정하는 것이다. 반면에 이와 상반된 입장을 지닌 이들은 주적(主敵), 즉각적 보복 운운하며 그에 대처하려 한다.
대다수 국민이 부조화를 해소하는 방식은 이 양극단의 중간 어디쯤에 해당될 것이다. 거칠게나마 요약하면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지배적 가설(어뢰설)과 북의 개입 가능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그 핵심대책으로 초기대응에 허점을 드러낸 군의 기강 강화, G2와의 외교적 공조 등을 강조하며 북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회피하려는 입장이다.
이는 분단체제가 빚어낸 근원적 부조리, 즉 일촉즉발의 남북대치 상황 안에서 아무 일 없는 듯 먹고 자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상을 이어가야 하는 기형적 삶의 양식과 그 궤를 같이한다. 가장 온건하고도 현실적이라 할 이 방식을 통해 우리는 지금껏 그나마 이 정도의 평화라도 유지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갈수록 무모해지는 북의 도발, 그에 정비례하는 우리의 무기력증 내지 위기불감증 심화가 그 후유증으로 남았다.
必死則生각오라야 평화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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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 참배 후 대통령이 방명록에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썼다. 떨리는 심정으로 우리 모두 가슴에 새겨야 할 구절일 것이다. 이러한 각성 없이 우리의 일상이 천안함 사태를 또다시 덮어버릴 때 이 땅의 진정한 안보, 진정한 평화는 정녕 무망한 일이 될 것이다.
윤석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younsm@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