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유럽연구회 지음, 책과함께, 440쪽, 1만8000원
유럽통합을 전공한 필자들은 학문적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유럽통합사 교양서를 기획했다. 인물의 생애에서 출발해 구체적인 유럽통합 사상과 정책으로 나아가는 본서는 명쾌하지만 딱딱한 이론서에 비해 부드럽고, 제도를 중심으로 다루는 유럽통합사에 비해 생생하다. 빅토르 위고부터 바츨라프 하벨까지 본서가 다룬 20명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역사적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유럽통합이라는 주제로 바라본 근대 유럽 인물평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본서의 또 다른 특징은 유럽통합사를 그 뿌리부터 탐구했다는 데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립·발전한 오늘날의 유럽연합은 19세기 근대 민족주의를 함께 고찰하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려운 역사적 구성물이다. 유럽통합의 본질은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초(超)민족주의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럽통합 관련 서적은 이 점을 단지 전제만 할 뿐 탐구하지 않는다.
본서는 마치니의 유럽통합 사상이 그의 민족주의론에서 발전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민족주의와 초민족주의의 내적 연관성의 한 단면을 드러냈다. 본서는 또한 각국의 유럽통합 정책이 국익과 타협하고 변형되고 실현되는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민족주의가 유럽이라는 공동의 이익 속에서 어떻게 조율되고 순화되었는지 보여주려 애썼다.
이 책의 백미는 위고를 다룬 부분이다. “오늘날 노르망디, 브르타뉴, 부르고뉴… 우리의 모든 지방이 프랑스 속으로 용해되었듯이 언젠가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영국, 독일, 대륙의 모든 국가들이… 상위의 통일체 속으로 용해되어 유럽의 우애를 조직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은 빅토르 위고가 1849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평화회의 개막식에서 한 연설 중 일부로서 유럽통합사 관련 서적에서 자주 인용되는 상징적인 문구다. 하지만 그의 연설을 인용한 책들 가운데 위고의 유럽통합 사상을 상세히 설명하는 책은 찾기 힘들다. 그의 변화무쌍한 삶과 사상 속에서 자라난 유럽통합 사상은 독자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김승렬 경상대 사학과 교수
<신동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