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기자의 눈/황규인]2010 대한민국 ‘초딩’으로 산다는 것

입력 | 2010-04-02 03:00:00


“저는 학원에서 시험을 보면 영어는 항상 100점을 맞아요. 그런데 수학은 꼭 한 개나 두 개 틀려요. 너무 속상해서 12층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BS e지식채널 ‘2007 대한민국에서 초딩(초등학생)으로 산다는 것’ 편에 나온 초등학교 2학년 예영이(가명)의 말이다. 이 프로그램은 다음 빈칸을 채워 보라며 시작한다. ‘내가 잊고 싶은 두려움은 ( )’ ‘우리 가족은 나에 대해서 ( )’ ‘나의 가장 큰 결점은 ( )’ ‘언젠가 나는 ( )’….

‘초등학생 70%는 학교 가는 것이 싫다’고 답했다고 e지식채널은 전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건 ‘학원에서 배운 것을 똑같이 반복하기 때문’이었다. 초등학생 10명 중 9명이 과외 수업을 받고, 하루 평균 과외 시간은 2시간 37분, 5, 6학년생은 오후 10시까지 공부하는 게 당연했던 2007년.

3년 후 ‘초딩으로 사는 법’은 많이 달라졌을까. 어린이재단은 1일 수도권 초등학생 322명을 대상으로 ‘주로 하는 거짓말’을 설문 조사해 발표했다. 이들 중 57.1%는 ‘숙제를 하지 않아 선생님께 거짓말을 했다’거나 ‘집에 와서 숙제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답했다. 이 결과를 보고 ‘친구들하고 노느라 숙제를 할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느꼈으면 좋으련만 ‘학원 숙제 때문에 학교 숙제할 시간이 모자란 모양’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e지식채널에서 아이들은 말한다. “선생님 왜 그렇게 어렵게 가르쳐 주세요? 그냥 공식만 알려주면 되잖아요.” 한 3년차 초등학교 교사도 기자에게 “솔직히 정규 수업보다 방과후 수업 진행이 더 쉽다. 아이들이 알려고 하지 않는 개념을 설명하는 것보다 문제 풀이로 진행하는 게 편하다. 나도 학창시절 (학원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지식채널 마지막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6학년 아이가 남긴 문장이 나온다. ‘내가 잊고 싶은 두려움은 (이번에 친 시험 점수다)’ ‘우리 가족은 나에 대해서 (공부 잘하는 것만 밝힌다)’ ‘나의 가장 큰 결점은 (공부를 못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공부 제일 잘하는 친구를 이기고 싶다)’고. 평소 “학원에 조금만 다니고 싶다”던 이 학생은 방학숙제를 하겠다고 방으로 들어가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며 목을 맸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다면 똑같은 문장을 주고 빈칸을 채워보라고 하는 건 어떨까. “어제 만우절이라 거짓말 실컷 했으니 오늘은 가장 솔직해 보자”며 말이다.

황규인 교육복지부 kini@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