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씨 신작소설 ‘물’“사람의 특성을 물질에 비유,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그려”
김동주 기자
그의 장편소설들에서는 일종의 맥락이 읽힌다. 1970년대 중동의 산업역군이었던 아버지를 모래 이미지로 형상화했던 ‘백치들’, 조선소가 들어선 마을을 배경으로 노동자의 고통을 그려냈던 ‘철’.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철과 모래의 상징적 이미지에 이어 이번엔 물이 전면에 등장했다. 이 소설은 물이란 액체처럼 한 가지 해석이나 의미의 틀로 고정되지 않는다. 증발하다 넘치고 스며든다 싶더니 어느새 다시 사라져버린다.
30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김 씨를 만났다. 그는 “사람보다는 고유한 속성이나 특질을 지닌 물질에서 상상력이 더 극대화되는 것 같다”며 “물이란 물질에 대한 관심이 소설로 이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소설에서 물은 물의 특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 인격화된다는 점이다. 물(어머니) 이외에도 불(아버지), 소금·공기·금(자녀들)이 등장한다. 그는 “물의 성질을 지닌 사람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 자연스레 불, 소금, 공기 같은 것들이 따라 나오게 됐다”고 전했다. 작가는 이들을 가족관계로 압축했다. 물의 특성에 대비되거나 친화되는 다른 물질이 등장함으로써 소설은 작가가 즐겨 구사하는 다양한 상징과 알레고리의 조합으로 치밀하게 얽히게 된다.
저수지에 있는 300만 t의 물을 몰아내고 집을 지은 아버지(불)는 단 한 방울의 물인 어머니를 쫓아내지 못했다. 소금인 ‘나’는 존재하기 위해 어머니(물)를 멀리 해야 한다. 쌍둥이 동생인 ‘금’은 아버지(불) 곁에 있을 때면 변형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처럼 작가는 물질의 성질을 빌려 한 가족 내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새롭게 탐색해간다.
“사람들 간에 복잡하게 얽힌 ‘욕망의 관계도’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서로 이기려는 관계, 하나로 뭉치려는 관계, 질투하고 선망하는 관계…. 그 모든 관계가 우리 가운데 있잖아요. 비단 가족뿐만이 아니라 직장, 사회 안에서의 관계도 마찬가지겠지요.”
작가는 지난해 하반기 미국 아이오와대의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여한 남편(소설가 김도언 씨)을 따라 미국에 체류하며 계간 ‘자음과모음’에 이 작품의 연재를 마쳤다. 그는 성실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출판사 ‘열림원’에서 오랫동안 편집자 생활을 병행했지만, 그동안에도 단편집과 장편을 꾸준히 발표했다. ‘퇴근하면 소설만 쓴다더라’ ‘집에 쌓인 단편과 장편이 수북하다더라’는 소문도 퍼졌다. 그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웃으면서도 “소설을 한 편 시작하면 가지를 쳐서 계속해서 쓸 거리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