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춘천교구장 물러나는 장익 주교
강원 춘천시 천주교 춘천교구 효자동 성당 내 성모상 앞에 선 장익 주교. 성모상은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가 조각했다. 장 주교는 “둥글둥글한 성모상과 닮았다”는 기자의 말에 환하게 웃었다. 춘천=김재명 기자
“나이가 들면 변화에 민감해져요. 가끔 서울에 갈 때마다 우리 사회가 너무 빨리 변하는 걸 느낍니다. 건물이 변하는 것보다 사람들 마음이 바뀌는 게 보여요.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사람들을 껴안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종교도 단지 이익집단일 뿐입니다.”
장 주교는 제2공화국 수반이었던 장면 총리의 아들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비서로 10년을 일했다. 현대사의 중요 순간들을 가까이서 목격한 그에게 교구장 은퇴의 소회와 사회현안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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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포교 대상 여기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지원해야
金추기경은 진실한 구도자
특권의식 없었기에 더 친숙”
춘천교구는 국내 유일의 분단교구다. 관할지역이 휴전선 이북의 강원도까지다. 이 때문에 장 주교는 재임 중 북한 지원사업에 힘썼다. 현재 경색된 남북관계에 대해 장 주교는 “체제, 이념, 명분과 삶을 동일시하지 말고 북한 동포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교단체들도 포교의 차원에서 벗어나 순수한 마음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아쉬움을 겪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나눌 게 있으면 나눠야죠.” 춘천교구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연탄 60만 장 이상과 슈퍼옥수수, 씨감자 등을 북한에 지원했다.
부친에 대한 질문을 안 할 수 없다고 하자 장 주교의 얼굴이 순간 환해졌다. 장 주교는 “아버님은 정치인 이전에 신앙인(천주교 신자)으로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비가 오는 날이었어요. 대문 앞에서 아버님께 ‘관용차를 타고 학교에 갈 수 없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불호령이 떨어졌어요. ‘네가 국회의원이냐’며 차 문을 꽝 닫고 떠나셨죠. 서운함보다 원칙에 충실한 아버님의 태도를 보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성직생활 중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았어요.” 말을 마친 장 주교의 눈가에 잠시 눈물이 비쳤다.
고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장 주교는 “가까이 모셨지만 단점을 찾아볼 수 없었던 진실한 구도자였다”고 기억했다. “김 추기경은 자신이 국민들과 정말로 똑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괴로워했을 만치 특권의식이 없었던 분이었죠. 김 추기경의 이런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기에 국민들이 친숙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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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성직자 생활을 평가해 달라고 하자 장 주교는 허허 웃었다. “어떻게 제가 평가합니까. 오직 하느님만이 아시겠죠. 지금은 그저 담담할 뿐입니다. 후회도 없고 자만할 것도 없습니다.”
춘천=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