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퀸 경쟁은 라이벌 간에 한쪽의 발전이 다른 쪽의 발전을 촉진하여 경쟁적으로 함께 진화하는 일을 의미하는데, 이런 현상이 레드퀸으로 불리는 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편에 나오는 일화 때문이다. 앨리스가 자기를 해치려는 빨간 옷의 지하세계 여왕 레드퀸을 만나자 혼비백산하여 달아난다.
한참 도망친 앨리스가 레드퀸을 따돌렸으리라 생각하고 뒤돌아본 순간 자기 옆에 그대로 있는 레드퀸을 보고는 놀라 외친다. “당신에게서 도망치려고 온 힘을 다해 한참을 달렸는데 어떻게 한 걸음도 멀어지지 않았나요”라고 묻자 레드퀸이 이렇게 답한다. “너는 빠른 속도로 앞으로 뛰었지만, 네가 뛰고 있는 길은 너보다 더 빠른 속도로 뒤로 움직이고 있어. 넌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려고만 해도 최소한 길만큼 빨리 뛰어야 하고,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가고 싶으면 길보다 빨리 뛰어야 해.”
숨가쁘게 달려 경쟁력 찾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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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현재의 경쟁력 덕분에 라이벌을 압도한 강자는 혁신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게으른 강자 증후군’에 빠져 기존 경쟁력 그대로 2회전 경쟁을 벌이게 된다. 그 결과 2회전에서는 강자가 1회전 때 가졌던 경쟁력에 대처하기 위해 혁신을 시도한 라이벌 때문에 1회전 때 경쟁력을 그대로 들고 나온 게으른 강자가 오히려 위기에 처한다.
우리나라 또한 레드퀸과 게으른 강자 현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광복 후 우리나라는 우리를 둘러싼 미국과 일본 등 강자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그 결과 스포츠나 한류의 예가 보여주듯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세계적 강자의 반열에 한쪽 발을 담그기만 했을 뿐인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써 게으른 강자 증상이 눈에 띄어 심히 우려된다. 스포츠 분야에서 우리가 배웠던 일본을 추월하는 데 성공했으나 잠시 느슨해진 사이 중국에 다시 추월당한 바둑이나 쇼트트랙, 양궁이 그러한데 가장 심각한 분야는 경제이다. 대표적 예가 이동통신이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나라 이동통신은 과감한 혁신으로 선발주자였던 미국과 일본 업체를 제치고 세계 정상에 올랐다. 삼성 LG SK KT 등 기기업체와 통신업체는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창조적이고 기발한 제품과 서비스를 쏟아내며 글로벌 이동통신의 혁신을 주도했으며 우리나라는 전 세계 이동통신 업체가 새로운 혁신을 실험해보는 테스트 시장 역할을 했다.
IT등 순간의 방심에 주도권 흔들
정상에 오른 우리 기업은 게으른 강자의 덫에 빠져 차세대 이동통신인 스마트폰의 가능성을 무시했고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자 하루아침에 주도권을 상실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아이폰과 블랙베리폰이 서비스되지 않는 유일한 산업국가라는 놀림을 받게 되었다. 지난달 비즈니스위크지 인터넷판에는 ‘한국의 이동통신 산업은 이제 흥미롭지 않다’는 기사가 헤드라인으로 실리기까지 하였다. 레드퀸과 게으른 강자의 전형적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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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