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랭킹 36위 4인승 봅슬레이, 올림픽 첫 출전서 19위 기염
국내 개척자인 맏형 강광배
청각장애 이긴 막내 김동현
‘푸셔’ 김정수와 이진희는
각각 역도-창던지기 선수 출신
불굴의 도전정신 똘똘 뭉쳐
亞 최강 일본도 물리쳐
손을 맞잡았다. 뜨거운 온기가 서로에게 전해졌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경기장은 관중의 응원 열기로 가득 차 바로 앞 사람의 말도 들리지 않는 상황. 그러나 온 신경을 경기에만 집중해서였을까. 그들 사이엔 오히려 고요한 긴장감마저 흘렀다.
이윽고 맏형의 나지막한 한마디. “후회 없이 준비했잖아. 보여 주자. 할 수 있다는 걸.” 팀원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를 바라보며 뜨거운 눈빛을 교환했다.
브레이크맨 김동현(23·연세대). 봅슬레이는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민감한 경기다. 작은 실수 하나로 순위가 요동치기 때문에 그만큼 경력이 중요하다. ‘10년은 해야 감이 온다’는 봅슬레이에서 막내 김동현의 경력은 고작 1년. 2년 전까진 선천성 청각장애로 대화조차 힘들었지만 수술로 청각을 회복한 뒤 1년 전 봅슬레이에 입문했다. 이제는 ‘한국 봅슬레이의 미래’가 됐다. 신체조건(185cm, 87kg)이 좋은 데다 겸손하고 성실해 강광배가 그동안 혼자 짊어진 짐을 덜어 줄 기대주로 평가받는다.
푸셔인 김정수(29·강원도청)와 이진희(26·강릉대). 각각 역도와 창던지기 선수 출신인 이들은 봅슬레이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얻었다. “역도를 할 땐 머리털까지 빠질 만큼 스트레스가 심해 고생했어요. 근데 봅슬레이는 힘들긴 하지만 머리털이 다시 나는 느낌이네요.”(김정수) “봅슬레이 출발선에 서면 긴장감으로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금방 또 그 짜릿함을 그리워합니다.”(이진희)
이들 4인의 전사는 28일 캐나다 휘슬러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남자 4인승 결선 레이스에 출전했다. 휘슬러 코스는 연습 도중 사고가 속출해 ‘죽음의 코스’로 악명 높은 곳. 하지만 오히려 공격적인 레이스로 거침없이 질주했다. 강광배는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데 그 짧은 순간에 그동안의 모든 힘든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치더라. 또 어머니와 아내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고 감격스러워했다.
결과는 52초92. 4차 시기까지 합산한 종합 성적은 3분31초13으로 19위. 세계랭킹 36위인 한국은 올림픽 첫 출전에 20위 안에 입성하며 작은 기적을 이뤘다. 또 한국보다 60년 이상 역사가 앞선 일본(21위)을 제치고 아시아 정상 타이틀까지 얻었다. 일본엔 봅슬레이 팀만 30개가 넘는다. 하지만 한국엔 아직 봅슬레이 경기장조차 없다.
“여기서 안주할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