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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0일 저녁, 많은 국민은 ‘곧 꺼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불타는 국보 1호를 지켜보았다. 이 ‘설마’는 숭례문 현판이 떨어질 때 가슴이 철렁하는 두려움으로 바뀌었고, 2층 누각이 무너질 땐 불길함으로 변모했다. 방화범 채모 씨가 “토지 재개발 보상금을 충분히 받지 못해 홧김에 불을 질렀다”고 말했을 땐 큰 분노를 느꼈다.
▷나라가 번성하려면 혼란을 겪지 말아야 한다. 유학에서는 혼란을 줄이려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상(五常)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조선조를 세운 이성계는 한양 도성의 동대문을 흥인문, 서대문을 돈의문, 남대문을 숭례문, 북문을 숙청문(智자 대신 淸자를 씀·현재의 숙정문), 도성 중앙의 종루를 보신각으로 명명했다. 인의예지신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정문인 숭례문은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입성했고 병자호란 땐 청 태종이 출입하는 등 온갖 병란을 겪었지만 조선조(505년)보다 긴 610년을 버티다 한국인에 의해 무너졌다.
▷일본과 유럽의 성들은 둘레에 깊은 해자(연못)를 파고 큰 돌로 단단히 지어져 있어 위압감을 준다. 평지에 있는 우리나라 성들은 해자가 없고 작은 돌로 축조돼 있어 약한 느낌이다. 우리는 산성을 지어놓고, 전란이 일어나면 산성으로 옮겨가 항전했기에 평지의 성을 강하게 짓지 않았다. 한양성은 전란 대비보다는 정치와 생활공간의 비중이 컸기에 세계적으로 드물게 부드러운 모습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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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논설위원 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