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영정’, 그 엄밀함을 향한 치밀함
유관순 열사 완벽 재현 위해
생존친구 인터뷰-골격 분석
앉아있던 마룻바닥까지 조사
7차례 심의끝 표준영정 지정
유관순 열사 표준영정 앞에 선 윤여환 교수. 그는 “항일 정신의 상징과도 같은 유 열사의 영정을 그린 것은 평생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윤여환 교수
윤 교수는 “영정에는 얼굴과 복식을 모두 담아야 하기 때문에 당시의 풍속과 역사 등에 정통해야 한다”며 “논개 영정을 그릴 때는 그가 적장을 유인할 때 썼던 화장법에 대해서도 연구했다”고 말했다. 세상에 없는, 그리고 때로는 사진도 영정도 남아있지 않은 사람을 그려야 하는 ‘막막함’을 그는 ‘치밀함’으로 넘고 있다.
백제 도미부인, 충의공 정문부, 사육신 박팽년 등의 영정도 그의 이런 치밀함을 거쳐 표준영정으로 지정됐다. 그는 중봉 조헌, 거제부사 김극희, 선전과 김함, 가포 임상옥 등의 영정을 그렸다. 한국-싱가포르 공동 우표 속에 있는 전통혼례의상 8종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요즘 조선 후기 제주도 관기 출신으로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평생을 바친 조선조 거상 김만덕의 영정을 그리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0월에는 김만덕기념사업회 공동대표이면서 제주 표준 여인상인 탤런트 고두심 씨를 만나 사진을 촬영했다.
윤 교수는 ‘영정 작가’ 외에 ‘염소 작가’로도 통한다. “염소의 눈은 다른 동물과 달리 동공이 떠 있어요.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느낌이지요. 염소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그 눈빛에 매료됐기 때문이에요. 파스칼이 갈대를 통해, 노천명이 사슴을 통해 그려내려고 했던 ‘사색’을 저는 염소를 통해 구현해내고 있어요.”
1986년부터 충남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화단에서 블루칩 작가로 통하는 박능생, 구인성 씨 등의 제자도 배출한 그는 ‘지금의 삶’이 ‘앞으로 소망하는 삶’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영정을 앞으로도 많이 탄생시킬 겁니다. 그러면서 염소의 사색을 그릴 겁니다. 작가란 그렇게 자신의 화두를 그려나가다가 죽는 거지요.”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