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몇 년 전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O J 심슨 사건을 기억한다. 심슨이 자신의 전처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기소됐을 때 그가 범인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사건 현장에서 채취된 DNA가 심슨의 것과 일치하고 전처와 사이가 나빴다는 등 정황 증거까지도 온통 그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더 놀라운 것은 피해자 가족이 제기한 민사재판에서 법원이 전처 살해 혐의를 인정하여 거액의 손해배상을 명했다는 사실이다.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에서 상반된 결론의 판결이 나온다는 것이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재판에서는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증거에 따라 사실인정을 해야 함은 민, 형사 모두 다를 바 없지만 두 종류의 사건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민사소송에서는 증명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쪽을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반면에 피고인이 무죄로 추정되는 형사소송에서는 합리적인 의심이 남아 있는 한 피고인에게 불리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국가의 형벌권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의 하나로서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지혜이다. 우리 형사소송법은 물론이고 선진 각국의 형사소송법이 예외 없이 채택한 대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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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판결은 서로 다르다. 어떤 면에서는 그러한 다름이 허용되는 사법부가 더욱 건강한 사법부이다. 인류 역사가 가장 우수한 의사결정 방법이라고 믿는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이 공존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두 개의 다른 판결은 오히려 환영할 만한 면도 있다.
다름은 틀림과 구별되어야 한다. 두 재판의 결과가 다르다고 해서 바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아직 상급심의 판단이 남아 있다. 하나의 사건이 대법원 판결로 확정되기까지 대법관을 포함해 많게는 19명에 이르는 법관의 지혜와 경험이 동원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많은 전문가의 검증을 거친다. 두 판결 중 어느 하나가 틀렸다면 이런 검증과정을 거쳐서 드러날 것이다. 이것이 우리 헌법이 예상하는 사법적 문제해결 과정이다.
판결이 잘못될 수 있다. 그러나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외부의 비판은 충분한 정보 없이 이미지에 근거하고 사건을 판단하는 법관에게 공정심을 잃게 할 우려가 있어 오히려 더욱 그릇된 판단을 하게 할 위험이 있다.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 외국에서는 지역적 관심도가 매우 높은 사건은 다른 지역으로 관할을 바꾸기도 한다. 한 발짝만 뒤에 서면 남을 비판하는 자신의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인다.
이상원 서울대 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