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법조계와 부장판사 이상의 법관 상당수는 단독판사의 경력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판결의 신뢰성을 높이고 법관 사이의 소통의 기회를 넓힐 수 있다”며 기대하는 분위기다. 반면 일부 소장파 판사들은 “나이와 경륜을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라며 “인사와 사무분담 권한을 판사회의에 대폭 이양해 법관 독립을 강화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처럼 최근 불거진 법원의 판결 시비 논란에 대해 법관의 ‘소통’과 ‘독립’ 사이에서 무너진 균형점 찾기의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법관의 수는 적었고 법관의 자질과 가치관도 비교적 균질한 편이었다. 당시에는 동료 법관들끼리 자주 모여 자신의 사건을 내어놓고 토론을 벌이곤 했다. 1996년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에 대한 항소심 재판 때 서울고법 배석판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치열하게 토론을 벌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법원의 판례와 사회적 공감대에 대한 토의가 자연스레 이뤄지다 보니 판결의 오차나 편차도 적었다.
광고 로드중
대법원의 사법부 개혁안은 인사 및 사무분담과 관련돼 있어 전체 판사회의를 거쳐야 한다. 판사회의는 의결권이 없는 자문기관이다. 그러나 개혁안이 판사회의에서 거센 반대에 부닥칠 경우 법원 내 갈등도 초래할 수 있다. 소통하고 공감하는 법원을 바라는 것은 국민뿐만이 아니다. 대법원이 다수의 침묵하는 법조인들의 요구까지 잘 수렴해 ‘소통과 독립’의 균형을 맞춘 합리적인 개혁안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이종식 사회부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