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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를 풀어내든 문학은 우리 시대의 살결”

입력 | 2010-01-25 03:00:00

네이딘 고디머-안드레 브링크 등 세계적 작가 9인 인터뷰집 나와
개인사-문학관-작업방식 등 거장들의 내면 생생히 담아




조국의 현실에 대한 실망으로 모국어를 버린 망명 작가, 백인 아프리카너로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에 도전한 반체제 소설가, 어머니가 의붓아버지에게 죽음 당하는 고통을 겪었던 흑백 혼혈 시인. 중국 출신 미국 작가 하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설가 안드레 브링크, 미국 시인 나타샤 트레서웨이가 그들이다.

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인 왕은철 전북대 교수가 브링크 등 동시대 세계적인 작가들의 개인사와 문학관, 작업방식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인터뷰를 ‘문학의 거장들’(현대문학)에 모아 냈다.

왕 교수는 1998년 인터뷰했던 존 쿠체를 비롯해 최근 트레서웨이까지 그동안 문학지 등에 발표한 인터뷰를 모았다. 모두 9명의 세계적인 작가의 육성을 전해들을 수 있다.

저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대, 미국 워싱턴대 객원교수 등으로 머무는 동안 현지 작가들과 인터뷰를 시도했다. 케이프타운대에 함께 머물렀던 인연으로 브링크를 인터뷰했고, 그의 소개 덕분에 네이딘 고디머도 만날 수 있었다. 쿠체나 할레드 호세이니처럼 번역작업이 매개가 돼 인터뷰 기회를 얻기도 했다. 이들과의 만남은 주로 연구실과 자택에서 이뤄졌고 전화나 e메일을 통해 보충하기도 했다.

남아공의 소설가 고디머와 쿠체는 각각 1991년, 200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고디머에게서는 작가의 윤리적 책무와 문학의 사회 참여에 대한 혜안을 배울 수 있다. 아프리카의 백인 작가로 식민주의에 맞선 정체성을 주로 다뤄온 그는 “작가가 무엇을 쓰든지 그것은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되고, 결국 작가는 사회적 상황의 형상화를 통해 무엇인가를 가르치게 된다”고 말한다.

쿠체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문학세계나 작품론이 특정하게 규정되는 것에 대해 줄곧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는 “내가 내 작품을 해석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처럼 다른 작가들이나 비평가들과의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비영어권 출신으로 미국 문단에 데뷔하고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구축한 작가들도 만나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태생의 인기 미국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연을 쫓는 아이’ ‘천개의 찬란한 태양’처럼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적인 역사와 여성들의 종속적인 삶을 가슴 뭉클하게 다뤄온 작가. 하지만 그는 “우선적인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아프가니스탄과 관련이 없는 인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면 주저 없이 그와 무관한 소설을 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경이 아니라 스토리와 인물”이라고 말한다.

하진도 독특한 이력의 작가다. 중국에서 태어나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서른이 넘어 미국으로 갔다. 그가 미국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톈안먼(天安門) 사건’ 때문이었다. 그는 “그러한 나라를 위해서 더는 봉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그는 비영어권 출신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조국에 대한 부채감 사이의 갈등과 관련해 “중국은 증오와 중상모략이 날뛰는, 제정신이 아닌 나라다. 중국을 마음속에서 차단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초고 이후 스무 번을 넘게 뜯어고치며 작품을 완성한다는 그는 미국 사회 내에서의 위치에 대해 “작가에게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법이다.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한, 그것이 주변이든 중심이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흑인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 미국의 레즈비언 작가 낸시 롤스, 불교에 귀의한 미국의 흑인작가 찰스 존슨 등과의 인터뷰도 수록됐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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