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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시험관리… 응시자 맘대로 고사장 바꿔

입력 | 2010-01-25 03:00:00

비뚤어진 교육열… “문제지 유출도 강사의 능력”




유독 우리나라에서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문제지 유출이 끊이지 않는 데는 허술한 고사장 관리가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교육평가원(ETS)은 SAT를 일선 초중고교를 빌려 진행하고 있다. 시험 해당일에 시험지를 나줘 주고 감독을 하는 인력은 교실당 1명 정도다. 또 시험 당일에라도 원한다면 고사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이번에 공모한 학원 강사와 대학생 3명도 23일 강원 횡성의 모 고교에서 가평의 중학교로 시험장을 바꿔 한 교실에서 같이 시험을 쳤다.

시험 관리도 주관사인 ETS가 아니라 고사장으로 쓰이는 학교에서 담당한다. 시험을 주관하는 ETS 소속 인력들이 현장을 일일이 점검할 수 없어 학교 교직원이 시험 감독을 대신 맡는다. 특별한 책임이 없는 이들이 시험을 관리하니 허점이 생길 확률도 높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23일 붙잡힌 피의자들은 이번 문제 유출 이전에도 세 차례나 문제지를 뜯어서 나갔다. 지난해 5월에는 서울 광진구의 한 외국인학교에서 SAT를 치르던 대학생 이모 씨(22) 등 2명이 시험지를 들고 달아나 13시간 뒤 경찰에 붙잡힌 일도 있다. 전문가들은 “SAT에 대한 현장 감시를 좀 더 보강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명문대에 입학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한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비뚤어진 이기심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강남권에만 수십 개의 SAT 학원이 들어섰고 한 달에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고액 수강료에도 발길은 끊이질 않는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다 보니 학원과 강사들의 살아남기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이들에게 문제지 확보는 이제 하나의 생존전략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원 강사들이 SAT 문제 유출에 가담한다는 것이 오래전부터 알려졌지만 대부분 “그것도 강사의 능력”이라며 지지해왔다. 태국에서 문제지를 빼낸 혐의로 입건된 강사 김모 씨(37)가 지난해 1월 학부모 초청 설명회에서 “방금 태국에서 따끈한 기출문제를 가지고 왔다”고 말하자 학부모들이 박수를 치며 열광했다고 한다. 빼낸 문제를 이용해 족집게 강사로 통하는 이들은 학원가에서도 모셔오기 1순위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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