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 궁중연례악 ‘왕조의 꿈 태평서곡’
1795년 윤2월.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華城)으로 행차했다. 문무백관을 비롯해 6000여 명이 따르는 거대한 행렬이었다. 화성에 도착한 왕은 문무과(文武科) 별시(別試)를 시행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을 참배했다.
다섯째 날, 이 행차의 핵심적인 행사가 열렸다. 왕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었다. 조선 왕조 사상 왕이 어머니의 회갑연을 치른 것은 유일무이한 일이었다. 조선 최고의 음악과 춤, 음식과 의복이 어우러진 이 행사는 공식 보고서인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세부까지 낱낱이 기록됐다.
이번 공연에는 주인공인 혜경궁 홍씨 역으로 여성인사 7명이 번갈아 출연한다. 혜경궁 홍씨의 부친 홍봉한의 직계 6대손인 홍연식 씨, 연극인 박정자 씨, 임돈희 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김용숙 대표, 홍금산 국립국악원 무용단 안무가, 가야금 연주가 이재숙 씨, 조선왕조 궁중음식 보유자 한복려 씨가 그 주인공. 일본에 머물고 있는 박정자 씨를 제외한 여섯 사람이 서울 북촌의 한 한식당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2001년 초연 무대부터 혜경궁 홍씨 역으로 출연해온 홍금산 씨는 “왕이 모친의 장수와 태평을 축원하는 치사문(致詞文)을 낭독할 때마다 눈물이 흘러 나중에는 손수건을 준비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혜경궁이 말하는 대사는 많지 않지만 공연에 임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홍씨는 말했다. 예식용 머리인 대수(大首)도 무겁기 그지없어 며칠간 어깨 찜질을 해야 한다는 것. 이재숙 씨는 “잔치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악가무(樂歌舞)일체로 진행돼 조선 궁중 문화를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행사”라며 “패션으로만 봐도 조선 최고의 패션쇼인 셈”이라고 말했다.
홍씨 가문 대표로 참여한 홍연식 씨는 “삶이 힘들 때마다 혜경궁께서 사셨던 기막힌 삶을 생각하면 ‘그런 인생도 견뎌낼 수 있었는데’라는 마음의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혜경궁께서 쓰신 ‘한중록’을 보면 자신의 삶은 한스러웠으되 누구의 마음도 다치지 않게 하려 했던 마음이 나타나죠. 남편을 죽인 시아버지도 감싸고 보호하려 했어요. 이런 점에서 효(孝)란 ‘따지지 않는 인간관계’로 설명할 수 있고, 이는 반가(班家)문화에서 소중히 남겨야 할 부분입니다.”
임돈희 교수는 “왕실은 당시 잔치를 통해 국가의 대표 이념인 효를 일반에 확산시켜 백성을 결집시키려 했다”고 설명했다. “인류학적으로 볼 때 효란 약자가 되어가는 부모에 대한 배려의 성격을 띠고 있죠. 오늘날에도 계승할 만한 문화 자산입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